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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베트남전 파병까지 ‘혁명 우정’으로 포장

2026-08-26 16:15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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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60년 전 전쟁을 다시 정치 자산화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된 조선인민군을 기리는 위령시설을 재정비하며 과거의 군사개입 역사를 다시 정치적 선전 자산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전사자의 희생을 추모하는 것 자체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반미전쟁’, ‘혁명적 우정’, ‘전통적 친선’이라는 정치적 언어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개의 문제를 제기한다.

조선신보는 26일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위령시설이 준공 22년 만에 재정비되며 새로운 기념비와 북한군의 베트남전 파병 관련 역사자료도 공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측 설명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공군 비행사 119명을 포함해 440여 명의 인민군을 파견했다. 당시 전사자들의 유해는 2002년 북한으로 송환됐으며, 기존 묘지는 2004년 위령시설로 개편됐다.

이번 재정비 사업은 지난해 김정은과 또 럼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의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 강화 움직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북한은 이를 양국의 ‘전통적 친선협조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쟁에 대한 철저한 정치적 해석이다.

북한은 베트남전을 여전히 ‘반미전쟁’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파병을 국제주의적 의무와 혁명적 연대의 역사로 묘사한다. 냉전시대 공산권의 군사개입을 오늘날까지도 이념적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정작 그 과정에서 왜 북한 청년들이 수천㎞ 떨어진 베트남 전장으로 보내졌는지, 파병 결정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발생했는지, 전사자와 가족들에게 어떠한 정보가 제공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의 역사는 지도자의 업적이 아니라 인간의 희생을 중심으로 기록돼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역사 서술에서 병사 개인은 좀처럼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들의 죽음은 언제나 ‘수령의 영도’, ‘당의 결정’, ‘반제국주의 투쟁’, ‘국제주의적 의리’를 증명하기 위한 집단적 서사로 편입된다.

이번 위령시설 재정비 역시 그러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북한이 새롭게 공개하겠다는 ‘역사자료’가 어느 정도까지 객관적인 기록을 담을지도 의문이다. 북한은 군사·외교 분야에서 국가가 승인한 서술 외의 자료 접근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체제다.

파병 규모와 작전 내용, 전사자 현황, 북한군이 수행했던 임무 등에 대한 독립적인 검증과 연구도 제한돼 있다. 따라서 새로운 자료 공개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접근 확대라기보다 북한과 베트남 공산당 사이의 ‘혁명적 혈맹’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적 역사 전시가 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시점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를 강조하는 동시에 베트남·라오스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도 적극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0년 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북한군의 역사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단순한 추모사업 이상의 외교적 메시지를 갖는다.

즉 북한이 냉전시대의 ‘반미 공동전선’을 오늘날의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다시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베트남의 외교정책은 북한이 선전하는 냉전적 구도와는 크게 다르다. 베트남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과 폭넓은 경제·안보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특정 진영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외교를 지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강조하는 ‘반미전쟁의 혈맹’이라는 과거의 언어와 현재 베트남이 추구하는 실용주의 외교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북한의 이번 보도에서 더욱 씁쓸한 대목은 국가가 전쟁과 희생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다. 해외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에게는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고 ‘열사’라는 명예를 부여하면서도 북한 주민 개개인의 삶과 희생, 그리고 국가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고통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기록과 증언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는 전사자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이 또 다른 정치선전의 도구가 되는 순간 추모의 의미는 변질된다.

진정한 위령은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는 데 있지 않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누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보냈으며,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이 희생됐는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60여 년 전 베트남의 하늘에서 목숨을 잃은 북한군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족과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진정으로 기억하려면 ‘반미전쟁의 영웅’이라는 구호보다 먼저 그들이 왜 타국의 전쟁터에서 죽어야 했는지를 묻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에도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우고, 또 하나의 ‘혁명 역사’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죽은 병사의 희생마저 체제와 외교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북한의 현실. 그것이 이번 베트남 조선인민군 위령시설 재정비 소식 뒤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모습이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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