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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정치국 확대회의, ‘경제 실패는 간부 탓, 해법은 사상동원’

2026-08-26 16:17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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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제도 개혁 대신 간부 질책과 주민 정신력 동원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올해 경제정책과 주요 건설사업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경제지도기관의 “미숙한 작전과 지휘능력”을 질책했다.

북한 매체는 이번 회의를 새로운 5개년계획 첫해인 2026년의 중요 정책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자리라고 선전했지만, 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한 경제운영이 여전히 ‘성과는 최고지도자의 업적, 실패는 간부의 무능’이라는 오래된 책임 전가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25일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당 제9차 대회 결정 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편향”을 지적하고 이를 경제지도기관들의 “미숙한 작전과 지휘능력의 후과”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어떤 정책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생산·투자·물가·식량·재정 등 주요 경제지표가 어떻게 악화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 언론들도 북한이 이번 회의에서 문제점을 거론하면서도 이른바 ‘편향’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북한이 경제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선 정책 자체가 현실에 적합했는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가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주민과 기업소에 충분한 자율성이 주어져 있는지부터 검토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진단은 이번에도 구조와 제도가 아니라 ‘간부들의 능력 부족’에 머물렀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이 제시한 해법이다.

그는 “백사천사를 사상사업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당 조직이 주민들의 “정신력을 남김없이 발양시키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더욱 공세적으로 벌이라고 주문했다. 경제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도개혁이나 시장 확대, 자율경영, 민생 중심의 재정 운용을 제시하기보다 다시 한번 사상교육과 정치적 동원을 앞세운 것이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계획이 차질을 빚는 문제를 노동자들의 정신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북한식 계획경제가 수십 년간 반복해 온 방식이다. 원자재와 전력, 설비와 자본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것은 경제적 처방이다. 그런데도 당은 문제의 원인을 충성심과 투쟁 의지에서 찾고, 다시 주민들에게 더 많은 희생과 동원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경제가 최근 외부 추정상 일정 부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추정을 인용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2025년 3.5% 성장한 것으로 평가됐고, 중국·러시아와의 교역 확대와 국가주도 건설, 군수산업 수요 등이 성장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은 한국의 약 1.8%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최근 보여주는 일부 성장세만으로 주민생활과 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됐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협력과 중국과의 교역 확대 등 외부 환경에 힘입은 성장이라면 이를 북한식 중앙계획경제의 성공으로 포장하는 데에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북한 정치국은 “중대한 변화와 성과”, “미증유의 창조투쟁”, “경이적인 장성속도”, “우리 제도의 우월성”이라는 선전적 표현을 반복했다. 객관적 경제통계와 주민생활 지표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정치적 수사만으로 성과를 증명하려는 전형적인 북한식 선전방식이다.

특히 김정은은 새 5개년계획의 목표를 단순한 경제적 과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위를 지키며 우리 제도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중대한 정치투쟁과업”이라고 규정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북한 경제의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경제정책의 목적은 주민들이 더 잘 먹고, 더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도록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경제는 여전히 주민의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체제의 우월성과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입증하기 위한 정치사업으로 취급된다.

경제가 정치투쟁이 되는 순간 경제적 합리성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계획이 실패해도 정책을 수정하기보다 간부를 질책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제도를 고치는 대신 노동자에게 더 강한 정신력과 충성심을 요구하게 된다.

이번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그 공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과는 당 중앙의 영도 덕분이고, 부족한 부분은 경제간부의 미숙함 때문이며, 해결책은 다시 당의 사상사업 강화라는 논리다. 최고지도자의 정책 자체는 오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북한 정치체제에서 책임은 언제나 아래로 흘러간다.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오늘의 하루하루의 성과”가 인민의 복리 증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한 차례의 정치국 결의나 충성 경쟁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식량과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경제, 개인이 자신의 노동과 생산의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제도, 실패한 정책을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경제를 정치선전에서 해방시키지 않는 한 아무리 “새로운 발전단계”와 “경이적인 장성속도”를 외쳐도 북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정치국 확대회의가 보여준 것은 북한 경제의 새로운 해법이라기보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북한이 진정으로 주민의 복리를 말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경제계획의 숫자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통치방식일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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