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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피해자 후손 행세해 독일 여권까지.. 중국인 28명 국적사기 수사

2026-09-09 21:15 | 입력 : 안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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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검찰, 32명 수사.. 위조서류로 유대인 피해자 후손 사칭 의혹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독일에서 나치 정권 당시 박해받은 유대인 피해자의 후손을 사칭해 독일 국적과 여권을 취득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규모 국적사기 사건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전체 피의자 32명 가운데 최소 28명이 중국 국적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뒤셀도르프 검찰은 7일 이 사건과 관련해 연방형사경찰청(BKA)과 함께 약 1년간 수사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피의자들은 위조된 문서와 허위 가족사를 이용해 나치 피해자의 후손으로 가장한 뒤 쾰른 연방행정청에 독일 국적을 신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확인된 사례만 32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절반은 실제 독일 국적 취득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대인 가족 족보에 가짜 ‘자녀·손자’ 만들어

독일 기본법 제116조 제2항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정권에 의해 정치적·인종적·종교적 이유로 독일 국적을 박탈당한 사람과 그 후손들이 독일 국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치 박해 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마련된 역사적 구제조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바로 이 제도의 취지가 범죄조직에 의해 악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관련 조직은 실제 국적 회복 자격이 있는 유대인 부부의 신원을 찾아낸 뒤,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자녀’나 ‘손자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허위 가족관계를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신분과 가족사는 독일 국적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제공됐고, 신청자들은 출생증명서와 혈연관계 자료 등을 조작해 독일 당국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국제수배 중국인도 독일 여권 취득 의혹

특히 국제 수배를 받고 있는 중국인까지 이 같은 수법을 이용해 독일 여권을 취득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납치·살인 관련 혐의로 수배 중인 중국인 류 씨는 2024년 고인이 된 유대인 부부 카를 지크프리트와 게르트라우트 수스킨트의 손자인 것처럼 꾸민 뒤 ‘데릭 왕’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국적과 여권을 취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런던에 거주하는 또 다른 중국인 톈 씨 역시 같은 유대인 부부의 자녀인 것처럼 가족관계를 꾸며 귀화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에 오른 상당수 중국인은 중국에서 형사사건이나 거액의 사기 등에 연루돼 해외로 도피한 인물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여권이면 자유롭게 이동”…중국 SNS로 고객 모집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국적 취득이 개인적인 서류 조작을 넘어 조직적인 사업으로 운영됐을 가능성이다.

관련 조직은 중국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고객을 모집하면서 독일 여권을 취득하면 여러 국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고 국제수배 등에 따른 이동 제한을 피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을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나치 피해자들의 명예와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마련된 독일의 특별 국적제도가 범죄혐의자들의 이른바 ‘신분 세탁’ 수단으로 변질된 셈이다.

피의자들이 독일이 아닌 키프로스와 이스라엘, 영국,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수사의 걸림돌이다. 독일 수사당국이 이들을 직접 소환해 조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적자 2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한 정신과 의사는 2017년 지크프리트 부부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했지만, 제출한 서류의 입국 시점과 실제 기록 사이에 모순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 기자에게는 “계속 추적하면 보복” 협박까지

사건을 추적해 온 《슈피겔》 기자에게 협박 메시지가 전달된 사실도 알려졌다. 기자들은 최근 영국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발신자로부터 WhatsApp을 통해 사건을 계속 취재할 경우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위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한 개인 차원의 허위 국적신청을 넘어 상당한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이 배후에 존재할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역사적 선의’ 노린 국적사기…독일 심사체계도 도마

이번 사건은 독일 정부의 국적 회복 심사체계에도 적지 않은 숙제를 던지고 있다.

나치 피해자와 그 후손을 상대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심사를 요구할 경우 또 다른 역사적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독일 당국은 그동안 신청자의 증언과 제출자료를 상당 부분 신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 ‘선의’를 조직적인 사기집단이 역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허위 자료를 이용해 취득한 국적이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취소가 어려워진다는 독일 국적법상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미 발급된 독일 여권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피해는 독일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치의 박해로 고향과 국적, 가족을 잃었던 실제 유대인 희생자들의 가족사가 국제 범죄자들의 ‘가짜 족보’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역사적 속죄를 위해 마련된 제도일수록 그 신뢰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검증 장치 역시 필요하다. 피해자를 돕기 위한 선의가 범죄자에게 특혜가 되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진짜 피해자와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독일 수사당국이 이번 사건을 단순한 문서위조 사건을 넘어 국제적인 국적사기 네트워크의 존재 여부까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희·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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