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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박태성 총리의 ‘현지료해’

2026-09-29 21:00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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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증산 독려가 보여주는 북한 경제의 민낯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 박태성 내각총리가 광산과 농장, 화력발전소, 공장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을 잇달아 돌아보며 증산과 설비 정비를 주문했다.

북한 매체는 이를 경제 전반을 세심하게 챙기는 지도 활동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북한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박태성 총리가 은률광산과 재령광산을 찾아 철광석 생산과 설비 보강 실태를 점검하고, 농업 부문에서는 가을걷이와 탈곡, 밀·보리 파종을 제때 끝낼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평양화력발전소에서는 터빈발전기와 보일러 보수를 앞당기고 설비를 ‘만가동·만부하’하도록 주문했으며, 평양고무공장에서는 생산공정 개선과 각종 고무제품의 질적 생산을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광업·농업·전력·경공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경제 현장점검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총리의 현지 방문 때마다 반복적으로 내놓는 주문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설비를 정비하고, 생산을 늘리고, 원료를 확보하고, 전력 손실을 줄이며, 노동자의 ‘정신력’을 발동하라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지시가 일회성 처방이 아니라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더 캐라, 더 돌려라”.. 지시로 해결되지 않는 생산 문제

이번 현지 방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광산과 발전소에 대한 주문이다. 은률광산과 재령광산에는 박토 처리와 배수 대책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채광법을 도입해 철정광 생산을 늘리라고 했다. 평양화력발전소에는 대보수를 앞당기고 발전설비의 출력을 높여 전력생산을 계속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산업경제라면 광산의 채광계획과 발전설비의 정비 일정은 전문 경영·기술 조직의 상시 업무여야 한다. 국가 최고위급 책임자가 현장을 찾아 “배수를 잘하라”, “보일러를 수리하라”, “설비를 최대한 가동하라”고 반복해서 독려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산 현장의 자율성과 정상적인 관리체계가 취약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설비를 ‘만가동·만부하’하라는 주문은 생산량 확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노후 설비가 많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고장과 안전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정비와 부품 공급, 연료 확보라는 구조적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가동률 제고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올해 들어 박태성 총리가 여러 경제 현장을 찾아 계획 초과 수행과 증산을 거듭 독려해 온 사실도 북한 경제 운영에서 이러한 현장 지시가 반복적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역시 지난 4월 박 총리가 공장·농장 등을 돌며 1분기 경제계획 성과를 선전하고 2분기 증산을 독려했다고 정리한 바 있다.

전력난의 구조적 원인은 그대로

이번 보도에서 평양화력발전소가 다시 등장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은 전력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발전설비의 정비와 출력 확대, 자가소비전력 절감을 강조한다. 이번에도 협의회에서는 발전소가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전력까지 줄일 것을 주문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전력 사정에 여전히 여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력 공급이 충분하다면 최고위 경제 책임자가 발전소 내부 소비전력 감축까지 직접 강조할 이유가 크지 않다. 발전소의 보일러와 터빈을 계속 수리하고 기존 설비에서 최대 출력을 뽑아내라는 지시 역시 신규 발전시설 확충이나 송배전망 현대화보다는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력난은 북한 산업 전반과 연결돼 있다. 전기가 부족하면 광산 채굴과 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고, 생산 감소는 다시 설비 교체와 전력부문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은 간부의 현장 방문이나 ‘정신력 발동’만으로 끊어내기 어렵다.

농업에서도 다시 등장한 ‘속도전’

농업 부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 총리는 벼가을과 탈곡, 가을밀·보리 파종을 제때 끝내고 밀식재배와 논판양어 등을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영농기법을 활용하고 농업 기계화를 높이는 것 자체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 농업의 핵심 문제는 특정 영농방법 하나의 우월성 여부보다 비료와 농기계, 연료, 종자, 전력, 농민에 대한 생산 유인 등 종합적인 농업 생산체계에 있다.

그럼에도 북한 보도에서는 수확철마다 “적기에 끝내라”, “역량을 집중하라”는 표현이 되풀이된다. 결국 생산성을 높이는 제도적 변화보다 노동력 동원과 행정적 독려에 의존하는 방식이 여전히 경제 운영의 중요한 수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정신력 발동’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나

평양고무공장에 대한 지시에서는 북한식 경제운영의 특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 총리는 공장 간부들에게 “대중의 정신력 발동”과 과학기술을 단위 발전의 생명선으로 틀어쥐라고 주문했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생산 부진의 돌파구를 노동자의 정신력에서 찾는 것은 북한 경제선전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온 방식이다.

하지만 현대 산업에서 생산성은 구호보다 자본과 기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원료 조달, 효율적인 경영체계에서 나온다. 부족한 설비와 원료를 노동자의 충성심이나 정신력으로 대신하려는 방식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오히려 생산목표가 과도하게 설정된 상황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면 현장의 책임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책당국이 아니라 노동자와 말단 간부에게 전가될 위험도 있다.

총리의 현장 방문이 많다는 것, 과연 좋은 신호인가

북한 선전매체는 지도자나 총리가 공장과 농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경제를 세심히 챙기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현대 경제에서 국가 지도부의 역할은 개별 발전소의 출력이나 광산의 배수 작업을 일일이 지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생산 현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투자하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본질적인 역할이다.

총리가 광산에서는 채광법을 지시하고, 농장에서는 파종 시기를 주문하며, 발전소에서는 보일러 수리를 독려하고, 공장에서는 생산공정을 챙겨야 경제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지도력의 세밀함이라기보다 중앙집권적 경제체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다.

북한 당국은 이번 현지료해에서도 ‘해당한 대책들이 강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현지협의회나 증산 구호가 아니다.

전력과 원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기업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며, 농민과 노동자가 자신이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경제 환경이다.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더 생산하라, 더 가동하라”는 지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 경제가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지 모른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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