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작품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작품 자체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우리가 그 작품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해즐릿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등장인물들』에서 이렇게 쓰며 『리어 왕』 앞에서 느낀 경외를 기록했다. 그 작품은 가까이 다가설 수 없을 만큼 숭고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한 노인의 경솔한 판단에서 반란과 전쟁이 터져 나오고, 그 속에서 리어와 그의 딸 코딜리어의 고통과 죽음은 섬뜩한 비애, 아니 공포 속에 두드러진다.
그러나 주요 인물들의 죽음은 희생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악인들 역시 죽는다. 에드먼드, 고너릴, 리건, 콘월은 모두 그들다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래서 이 고통의 세계에도 어느 정도의 지상적 정의는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국 여기서 본질적인 사실은 고통 그 자체다.
그렇다면 1681년 나훔 테이트가 이 작품을 개작하면서 얻은 인기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판본에서는 리어와 코딜리어가 살아남고, 코딜리어는 에드거와 결혼한다. 이 할리우드식 결말의 원형이라 할 만한 판본은 1823년까지 무대에서 원작을 대체했다. 심지어 새뮤얼 존슨도 이 결말을 선호했다. 그는 코딜리어의 죽음을 읽는 것조차 견디지 못해 늘 그 대목을 건너뛰었는데, 나중에 작품을 편집하는 일을 맡고 나서야 의무감에 따라 그 부분을 제대로 읽게 되었다.
『리어 왕』은 현대에 들어 여러 훌륭한 무대와 영화로 재창조되었는데, 그중 손꼽히는 작품 하나가 그리고리 코진체프가 감독한 1971년 영화 『코롤 리르』(Korol Lir, 『리어 왕』)이다. 각본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번역을 토대로 했고, 음악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맡았다.
1905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코진체프는 레닌그라드를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고, 볼셰비즘 초기의 예술적 열광, 곧 자신이 “예술의 카니발”이라고 불렀던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920년대에 니콜라이 고골을 정신적 지도자로 삼은 ‘기괴한 배우 공장’을 공동 창립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위예술의 축제는 점점 더 억압적이고 무자비해지는 스탈린 체제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스탈린 정권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유일하게 승인된 창작 방식으로 강요했고, 이에 저항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진지한 예술을 만드는 일을 극도로 위험한 사업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코진체프는 다작하는 작가이자 감독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관련해서는 1941년 『리어 왕』을 무대에 올렸고, 1953~1954년에는 『햄릿』을 연출했다. 훗날 한 예리한 비평가는 그 『햄릿』의 주인공을 소련 사회가 “스탈린을 청산하기 위해” 벌인 투쟁의 “전우”라고 표현했다. 다행히 연극이 공연되기 직전에 스탈린은 죽었고, 그의 사악한 통치는 좀 더 온건한 흐루쇼프 체제로 대체되고 있었다.
물론 “온건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흐루쇼프가 쿠바에 핵탄두 장착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시도는 세계를 파국적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다. 코진체프의 영화 『햄릿』은 흐루쇼프가 실각하기 직전에 개봉되었는데, 그 대담함은 신중하게 절제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충분히 도발적이었다.
소련의 검열관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좀처럼 금지하거나 난도질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스테르나크 같은 시인 겸 번역가나 코진체프 같은 연극·영화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순수 창작물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훨씬 더 넓은 운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신중함은 필요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왕이나 대담한 찬탈자, 사악한 폭군을 다룬 옛 희곡 속에 동시대 정치의 의미를 은근히 심어 넣는 것이 가능했다.
코진체프는 자신의 저서 『리어 왕: 비극의 공간』에서 러시아에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증오해야 할 것과 사람을 올바르게 증오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도덕적 모범을 찬양하며 이렇게 쓴다.
“러시아 예술에서 선은 인간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격렬한 증오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코진체프의 영화는 셰익스피어 원작과는 달리, 마치 지네처럼 길게 늘어선 민중의 행렬로 시작한다. 그들은 달 표면처럼 황량하고 험악한 풍경을 고통스럽게 가로질러 간다. 맨발은 날카로운 돌 위를 힘겹게 딛고, 다리가 없는 한 여인은 임시로 만든 수레에 올라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간다. 애처로운 플루트 혹은 리코더 소리가 기묘한 선율을 반복한다. 단순하지만 기막히게 효과적인 이 음악은, 나중에 알게 되듯 어릿광대의 음악이다.
순례자들이 향하는 곳은 리어 왕의 요새다. 이 요새는 처음에 군중의 시점에서 보이는데, 거대한 성벽은 산허리처럼 위압적이다. 말을 탄 기사들은 백성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리어는 자신의 왕국을 탐욕스러운 두 딸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에게 충분히 아첨하지 않은 코딜리어를 추방한 뒤 성벽 꼭대기로 올라가 가장 낮은 신분의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를 보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 모습이란 참으로 기이하다. 이 리어는 헝클어진 흰 머리칼을 가진 자그마한 노인이다. 그의 분노는 무섭다기보다 애처롭게 보인다. 리어를 연기한 에스토니아 배우 위리 예르베트는 놀랄 만큼 솔로몬 미호엘스와 닮았다. 미호엘스는 1930년대 이디시어판 『리어 왕』에서 주연을 맡아 오래도록 명성을 남긴 유대인 배우였다.
유대인 정치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미호엘스는 1948년 스탈린의 반(反)코스모폴리터니즘 숙청 과정에서 살해되었다. 이러한 의도적인 외모의 유사성, 나아가 암묵적인 도덕적 유사성은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던 러시아인들에게는 명백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러시아인은 생각보다 많았다. 이 연관성을 비롯해 훨씬 더 많은 내용은 티파니 앤 콘로이 무어의 『코진체프의 셰익스피어 영화들: 「햄릿」과 「리어 왕」에 나타난 러시아의 정치적 저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관련 일화와 통찰의 보고라 할 만하다.
리어는 인간들 가운데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참된 처지를 깨닫기 위해 완전히 제정신을 잃어야 한다. 광기가 그를 명료함으로 이끈다.
그는 광인 ‘불쌍한 톰’으로 가장한 에드거에게, 두 사람이 광란의 폭풍을 피해 초라한 오두막에 몸을 숨긴 순간 그 유명한 말을 건넨다.
“너야말로 인간 그 자체로구나. 문명의 옷을 벗은 인간은 너처럼 가난하고 벌거벗은 두 갈래 짐승에 지나지 않는구나.”
격노하는 자연의 요소들은 코진체프가 “인간과 우주 사이의 영원한 다툼”이라고 부른 것을 상징한다. 에드거는 이를 시적으로 압축해 “하늘의 박해”라고 표현한다. 허리케인 같은 바람은 리어와 그의 동료 어릿광대를 사납게 후려친다. 두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를 단단히 붙잡고, 결국 한 몸처럼 포개져 쓰러진다.
육체적으로도 형이상학적으로도 인간을 징벌하는 이 폭풍의 세계는 어느 누구도 편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리어는 왕의 위엄과 군중 사이에 방역선처럼 경계를 치던 기사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씻지 못하고 집도 없는 사람들과 자신이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들은 한때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던 그의 백성이었고, 그는 그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이제 그들은 그의 동료가 되었고, 그는 그들의 냄새를 맡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 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손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