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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87]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의 회복

2026-10-10 07:51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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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인간 본성에 내재적인 도덕적 형상이 있는지를 둘러싼 혼란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혼란의 상당 부분을 낳는 근원이다. 이러한 인간학적 위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격동하던 유럽에서 처음으로 실존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돌이켜 보면, 점령기의 참상을 고려할 때 이 위기의 가장 날카로운 지적 표현들이 나치의 군홧발 아래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사상가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알튀세르, 데리다, 푸코, 라캉에게는 서로 다른 점들이 있었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손쉽게 답할 수 있다는 가능성, 아니 사실상 어떤 답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하나였다.

우리는 이제 이 인간학적 위기의 다음 단계에 살고 있다. 프랑스 이론은 19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그 주창자들은 에밀리 이킨이 최근 묘사했듯이 “학계의 스타들”이 되었다. 이들은 지적 유명 인사들이었으며, 이들의 허무주의는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자신감으로 특징지어지는, 유럽과는 매우 다른 미국 문화에서 비옥한 토양을 발견했다. 의미의 부정은 전후 유럽의 황량한 형이상학적 불모지를 사로잡았다.

미국에서는 그것이 번영과 자신감에 찬 문화의 반권위주의적 유희성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문화는 자신이 인간 본성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후쿠야마의 헤겔적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을 구현한다고 여길 수 있었다. 미국에서 푸코는 의미의 파괴자라기보다는 부르주아 성도덕의 구속복에서 사람들을 풀어 주는 해방자였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도 자신감의 위기를 겪어 왔다. 역사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끝나지 않았다. 9·11은 모든 사람이 미국 문화를 찬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성혁명은 미국 사회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했던 도덕적 합의를 산산이 깨뜨렸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인문주의의 위기가 우리 앞에 닥친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비판 이론과 미셸 푸코 같은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근거지인 중도좌파 진영을 넘어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놀랍지 않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봉쇄 조치는 푸코의 생명권력 개념으로 분석하기에 더없이 적합했고, 조르조 아감벤은 이에 어김없이 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인문주의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러나 개별 인간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형이상학 없이는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리처드 도킨스조차 문화적 그리스도교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방향을 가리킨다. 순수한 유물론으로는 필요한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인간이 한낱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메리 해링턴의 인상적인 표현을 빌려 “고기 레고” 이상의 존재로 여겨져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점에서 옌스 치머만의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란 무엇인가?』는 이 주제를 소개하는 반가운 책이다. 치머만은 인문주의와 본회퍼, 기술에 관한 자신의 이전 연구를 바탕으로 핵심 쟁점들에 대한 생각을 집약한다. 그는 ‘인문주의’라는 용어를 허무주의에 대한 세속적 대안이라는 통속적 용법에서 구해 내고, 그리스도교 인문주의가 교육과 기술, 정치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치머만은 칼케돈 공의회의 그리스도론,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토마스 아퀴나스,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원천들뿐 아니라, 이런 저작에서 흔히 만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할 인물들인 마르틴 부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와도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하이데거는 난해한 사상가로 악명이 높고, 그의 해설자들은 대개 그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치머만은 그렇지 않다. 그는 우리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하이데거가 지니는 의미를 명료한 문장으로 밝혀낸다.

이러한 대화의 결과물은 단순히 옛것을 되살리는 데 그치는 저작이 아니다. 치머만은 그리스도교의 과거 지혜를 현대의 말투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사상가들의 통찰을 활용하여 그리스도교적 사유를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인간성과 언어적 존재로서의 실존 사이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특히 세 개의 장이 중요하다. 교육에 관한 장에서 치머만은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르치기 위한 토대로 학생들이 인문학의 전통에 깊이 젖어 들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논증하며, 인간을 인격체로 보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그는 기술에 관한 장에서 이 주제를 더 발전시킨다. 여기서 그는 우리를 신체에서 분리하고, 이전의 모든 인간관계를 기술로 매개되는 관계로 바꾸는 기술은 참으로 인간답게 존재하는 데 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기술은 우리를 사물로,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대로 “바이트, 또 바이트, 또 바이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정보”로 바꾼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사용해 왔지만, 하나의 일을 수행하면서 우리와 환경의 관계를 바꾸는 도구들, 예를 들어 망치가 있는가 하면, 현실을 포괄적으로 매개하고 그로써 무엇을 현실로 인정할지를 판정하는 주체가 되려는 도구들도 있다. 후자의 도구들은 결국 자신들의 모습대로 우리를 다시 만들거나, 적어도 우리의 자기 이해를 재형성한다. 치머만은 인간 인격의 이러한 대상화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긴장과 분열의 양상으로 우리의 정치를 재편하고 있다고 본다.

그 세 번째 장에서 치머만은 서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를 세우는 토대로 삼았던 인간학, 곧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관념의 회복을 호소한다. 그리고 나는 이 장을 읽으면서 인격적 존재에게 신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를 인간으로 알아보는 것은 몸을 지닌 존재로서 만나는 자리에서이다. 이것이 우리의 교육 정책과 정치, 그리고 이 둘의 바탕이 되는 기술의 사용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란 무엇인가?』는 내용이 풍부하고 사유를 자극하는 책으로, 물어야 할 질문들을 많이 제기하며 적절한 그리스도교적 답변을 향한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 시대의 질문이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면, 치머만은 그리스도교 전통과 현대 대륙철학의 중요한 통찰들을 건설적으로 활용하여 사려 깊고 너그러운 답변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가 다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만큼 견실한 문화를 회복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과 같은 기여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루는 요소들을 제시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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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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