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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백화점 종업원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글에서 정작 상품과 서비스, 고객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불멸의 혁명업적을 깊이 체득해간다」는 평양아동백화점 종업원들의 학습 모습을 전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총비서의 위대성과 이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다.
주민을 위한 상업시설의 일상을 다루면서도, 서술의 중심에는 주민의 생활이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찬양이 놓여 있다.
글은 “세기적인 기적과 전변”, “인민의 꿈과 리상”의 실현을 말한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있었고, 주민의 생활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나 수치는 제시하지 않는다.
아동용품의 가격과 품질, 상품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지, 이용자들이 서비스에 만족하는지에 관한 설명도 없다. 성과를 입증해야 할 자리를 최상급의 수식어가 대신하는 셈이다. ‘위대하다’는 선언의 반복은 그 위대함을 검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종업원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도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글은 “누구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날에 대한 신념을 굳히고 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개별 종업원의 구체적인 발언이나 서로 다른 경험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이 글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도 속 종업원들이 모두 같은 감정과 결의를 가진 집단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은 노동자 각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보다 이상적인 충성의 모습을 제시하는 데 가깝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지도자에 대한 학습이 “참된 봉사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겠다는 결의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주민을 위한 봉사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은 서로 다른 평가 대상이다. 서비스의 질은 이용자가 필요한 물건을 합리적인 조건으로 구매하는지, 불편과 민원이 제대로 해결되는지로 살펴야 한다.
지도자를 얼마나 높이 받드는지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종업원의 업무 능력이나 백화점의 운영 성과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앞날은 끝없이 밝고 창창하다”는 단정 역시 현실을 평가할 질문을 남기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낙관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설득하려면 현재의 문제와 개선 계획, 달성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지도자를 모셨다는 사실 자체가 밝은 미래의 근거가 되면, 정책과 운영의 성과를 따져 묻는 과정은 생략된다. 찬양의 언어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빈약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 생활과 노동의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백화점의 실제 운영 상태나 종업원들의 처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가 보도의 문제를 드러낸다. 독자는 주민이 무엇을 얻었는지, 종업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고, 지도자가 위대하다는 결론만 전달받는다.
인민을 위한 성과를 말하려면 인민의 생활을 보여줘야 한다. 백화점이라면 상품과 가격, 서비스와 노동환경을 설명하고, 이용자와 종업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인민의 충복’이라는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충성의 다짐을 얼마나 크게 외치는지가 아니라, 주민의 필요를 얼마나 충실하게 충족했는가이다. 이 보도에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찬사가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할 구체적인 사실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