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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28] 세례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2026-05-04 07:5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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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75년 전, 1951년 4월 29일, 나는 볼티모어의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성당에서 예수회 사제 토머스 러브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늙은 악마는 틀림없이 내 갓난아기 시절의 자아에 깊이 발톱을 박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족 전승에 따르면, 물과 성령으로 그가 쫓겨났을 때 내가 어찌나 크게 울부짖었던지, 사촌 주디가 고해소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훗날 내 산문 문체에서 이 경험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에 대해 논평할 수 없다.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성당은 그리스·로마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훌륭하게 결합된 건축물로, 지금은 성 요셉 관구의 도미니코회 사제들이 맡고 있다. 그들은 활기찬 본당 사목과 인근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위한 캠퍼스 사목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성당에는 뛰어난 스테인드글라스가 여럿 있고, 많은 로마 대성전에서 성인들이 늘어선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후진(後陣)의 장식은 내 세례 75주년, 곧 다이아몬드 기념일을 맞아 성찰하기에 적절한 한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성인들의 통공이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교회 안으로 합체되는 것이다. 세례의 물 안에서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으로 들어 올려진다는 것은,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벗들로 이루어진 초시간적 몸 안으로 합체된다는 뜻이다.

전통이 말하는 지상 교회, 곧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 연옥 교회, 곧 죽음 이후 정화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천상 교회, 곧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뵙는 복을 누리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교회 안의 이 세 “상태”는 세기를 가로질러, 아니 우리가 지각하는 자연 세계를 넘어, 하나의 몸, 하나의 통공을 이룬다.

그것이 “성인들의 통공”인 까닭은, 세례로 인해 그 안에 속한 모든 이가 성덕의 소명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이며, 그 거룩함에는 정해진 단 하나의 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75년 동안 나는 참으로 많은 방식으로 그 성덕을 경험해 왔다. 그 각각은 내 영혼과 영성 생활에 흔적을 남겼다. 몇 가지만 들자면 다음과 같다.

아마도 나는 세례의 물가로 나를 데려가 주셨고, 내가 그분들과 함께 살았던 20년 동안 나를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해주신 부모님의 희생적 사랑을 통해 성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첫 직관을 얻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정신을 가장 깊이 형성하고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나를 단련시켜 준 교사들 역시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해 주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늘 인내로 나를 가르쳐 주신 피아노 선생님, 노트르담 학교 수녀회의 메리 아널드 수녀님도 그러했고, 나의 위대한 합창 지휘자였던, 성미는 까다로웠지만 열정적인 천재 로버트 트윈햄도 그러했다. 내가 “종교적 체험”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마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음악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알코올 중독과의 오랜 싸움을 통해 성덕과 평온에 이르기 위해 분투한 한 본당 사목자의 경험으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아내와 자녀들은 저마다 독특한 성덕의 은총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분명 인내라는 성인다움의 특성을 살아냈다.

나는 세례를 통해 그들 안에 주입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통해 박해 가운데서 성덕으로 성장한, 박해받은 순교적 증거자들을 알게 되는 특권을 누렸다. 몇 사람만 이름을 들자면 우크라이나의 미로슬라프 마리노비치, 리투아니아의 니욜레 사두나이테 수녀, 홍콩의 지미 라이, 베트남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응우옌 반 투언 추기경이 있다.

또한 지난 30년은 내게 로널드 녹스의 신중한 경고를 깊이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나는 예전에 그 말을 존 헨리 뉴먼의 말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그 경고란 “베드로의 배를 타고 항해하는 이는 기관실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로마에서 성덕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베냉의 베르나르댕 강탱 추기경, 나이지리아의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 기니의 로베르 사라 추기경 같은 이들과의 만남에서였다.

이 세 교회 인물은, 생존해 있든 이미 세상을 떠났든, 가장 냉소적인 교황청 관료들조차도 하느님의 사람으로 인정한 이들이며, 세례 때 부름받은 성덕을 실제로 살아낸 이들이었다.

더 나아가 나는 두 분의 성인다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알게 된 엄청난 은총을 특별히 마음에 새기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분들의 사목과 가르침의 위대함은 그분들이 근본적으로 회심한 그리스도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그분들은 세례를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여기며 지극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성인들의 통공”에 참여한다는 것은 세례 안에서 부여되는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다. 

75년 전 내게 주어진 세례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내가 특별히 감사하는 것은 바로 이 “우리를 둘러싼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히브 12,1) 안으로 합체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온 산,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히브 12,22)에서 그들과 함께하게 되리라는 전망이야말로 나의 위대한 희망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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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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