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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이란대사 모습 |
이란 대사를 불렀다. 그런데 초치는 아니고 “협의”였다고 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외교 현장에서 특정국 대사를 정부가 불러 항의성 입장을 전달했다면, 국민이 이해하는 상식의 언어로는 그것이 바로 초치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를 두고 “초치가 아니라 협의”였다고 해명한다. 국민 앞에 정직하게 설명해야 할 사안을 놓고, 단어 하나를 바꿔 책임과 의미를 흐리려는 것이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라 말장난이며, 해명이 아니라 궁색한 변명이다.
문제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정부가 상대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만약 같은 사안의 상대가 일본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정부는 초치라는 표현을 숨기기는커녕, 대대적으로 공개하며 강경한 메시지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 앞에서 망신을 주고, 항의를 넘어 압박과 겁박에 가까운 외교적 제스처를 취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데 이란을 상대로는 갑자기 말이 부드러워지고, 태도는 낮아지며, 표현은 애매해진다. 국민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외교는 국가의 품격과 원칙을 보여주는 행위다. 상대국이 누구냐에 따라 원칙이 바뀌고, 힘이 센 상대 앞에서는 물러서고, 만만한 상대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은 결코 당당한 외교가 아니다. 더구나 정부가 국민에게까지 정확한 설명을 피하고 “협의”라는 표현 뒤에 숨는다면, 그것은 외교적 신중함이 아니라 저자세의 은폐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란에 대해 정부가 왜 이토록 조심스러운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물론 외교에는 공개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부는 최소한의 원칙과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항의할 일이 있었다면 항의했다고 말하면 된다. 초치했다면 초치했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굳이 “초치가 아니라 협의”라고 해명하는 순간, 국민은 오히려 더 큰 의문을 갖게 된다. 혹시 우리가 무언가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가. 혹시 상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에게는 말장난으로 둘러대는 것은 아닌가.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란 대사를 왜 불렀는가.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가. 그것이 항의였다면 왜 초치라는 표현을 피했는가. 협의였다면 무엇을 협의했는가. 국민은 외교적 수사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국가가 당당한 원칙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외교는 말의 기술이기 전에 국가 의지의 표현이다. 단어 하나를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초치”를 지우고 “협의”를 써넣는다고 해서 저자세 외교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국민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말장난이 아니라 설명이고, 변명이 아니라 책임이다.
국민은 묻고 있다. 이것이 해명인가, 말장난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는 지금 누구 앞에서 당당하고, 누구 앞에서 작아지고 있는가.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