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평양 화성지구 4단계 1만 세대 살림집 거리를 두고 “조형예술성과 선진성이 결합된 대건축군”이라고 선전하고 나섰다.
건축대학 교원들의 발언을 앞세워 고전미와 현대미, 주체적 성격과 인민적 성격, 국가의 잠재력과 부흥발전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 화려한 수사 속에는 북한 주민의 실제 주거권과 생활 현실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매체의 보도는 늘 그렇듯 건축을 도시계획이나 주민 복지의 관점이 아니라 체제 과시의 도구로 설명한다. 화성지구 4단계 살림집 역시 “로동당의 수도건설구상과 령도”에 의해 일떠섰다고 강조된다.
주택이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공공정책의 결과라기보다 최고지도자와 당의 업적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이는 북한식 건설 보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특히 이번 보도는 “고전미와 현대미의 조화”, “새로운 형식의 대건축군”, “건축조형성·예술성” 등을 반복적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살림집의 본질은 외관의 장식성과 도시 스카이라인의 과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주민들의 안전, 난방, 전기, 수도, 위생, 교통, 생활 인프라에 있다.
아무리 지붕 처리와 마감재료가 세련되었다고 선전해도, 주민의 생활 조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민적 건축’이 아니라 ‘전시용 건축’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건설 사업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평양의 신축 살림집은 북한 전역 주민의 보편적 주거 개선이라기보다 수도 중심의 체제 선전 사업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 낙후된 주거 환경, 노후 주택, 에너지 부족, 식량난과 생활고는 그대로 둔 채 평양의 특정 구역에 고층 아파트 단지를 세우고 이를 “나라의 부흥발전”으로 선전하는 방식은 북한 사회의 불균형을 오히려 드러낸다.
또한 대규모 속도전식 건설의 이면에는 노동 동원 문제가 뒤따른다. 북한은 대형 건설 사업을 추진할 때 청년돌격대, 군인건설자, 각종 조직 동원을 앞세워 ‘헌신’과 ‘충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안전, 임금, 휴식, 작업 환경이 제대로 보장되는지는 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
화려한 준공식과 선전문구 뒤에 건설 현장에서의 강제적 동원과 희생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결코 인민을 위한 성취라고 말할 수 없다.
북한 매체는 이번 화성지구 4단계 건설을 “국가의 잠재력”을 과시하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정한 국가의 잠재력은 고층 건물의 외관이나 건축 양식의 다양성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민이 안정적으로 먹고, 살고, 치료받고, 이동하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 드러난다. 주택이 많아 보인다고 해서 주거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새 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주민의 삶이 자유롭고 풍성해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북한의 건축 선전은 언제나 ‘수령의 은혜’와 ‘당의 영도’를 중심에 놓는다. 이는 주민을 주택 정책의 권리 주체가 아니라 시혜를 받는 대상으로 만든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주거는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살림집조차 정치적 충성 경쟁과 체제 선전의 소재가 된다.
화성지구 4단계 살림집 거리의 외형이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그것만으로 북한 주민의 삶을 평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주민의 삶의 질이며, 거리의 화려함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자유와 권리다. 평양의 일부 지역을 번듯하게 꾸미는 일이 북한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이번 보도는 북한 당국이 여전히 건축을 주민 생활 개선의 수단이 아니라 체제 우월성 과시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형예술성과 선진성이 결합된 대건축군’이라는 표현은 화려하지만, 그 말이 덮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의 불평등한 주거 현실과 동원 체제의 그늘이다.
건축물은 높아졌지만, 주민의 권리는 여전히 낮은 곳에 머물러 있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