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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김정은이 5월 17일 전군의 사단·여단 지휘관 회합을 소집하고 이들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보도는 여느 때처럼 “만세의 환호성”, “위대한 령장”, “무상의 영광” 같은 선전 문구로 가득했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 뒤에 드러난 핵심은 분명하다. 북한 정권이 다시 한 번 군사력 강화, 전쟁준비, 주적의식 고취를 체제 운영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회합에서 김정은은 사단장·여단장들에게 “우리 군대를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무장시켜야 할 역사적 위임”이 맡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대전 양상에 맞춘 훈련체계 정비, 실용적 훈련 강화, 군사편제 및 군사기술적 갱신, 제1선 부대 강화, 남부 국경선 요새화 등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억제’를 내세웠지만, 실제 내용은 북한 전군을 상시 전쟁준비 체제로 더욱 몰아넣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남부국경”과 “제1선부대”를 강조한 부분이다. 북한은 이미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려 왔다.
이번 발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남북 간 대화와 완충의 여지는 지워지고, 국경선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표현됐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군사적 대결 구도를 제도화하겠다는 신호다.
더 심각한 것은 김정은이 지휘관들에게 “계급의식, 주적의식”을 계속 높이라고 지시했다는 점이다. 군의 본분을 국토 방위와 주민 보호가 아니라 적대의식과 사상무장에 두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말하는 군사력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공적 방위력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와 당을 지키기 위한 체제 보위력에 가깝다. 주민의 안전보다 정권의 생존이 우선이고, 평화보다 긴장이 체제 결속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합을 마치 군 지휘관들이 최고지도자의 “믿음”을 받아 “영광”을 누린 행사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 주민의 삶은 보도 어디에도 없다. 식량난, 경제난, 지방의 생활고, 청년층의 동원 부담, 군 복무 장기화 문제는 철저히 지워졌다.
국가의 자원과 인력이 군사 현대화와 전쟁준비에 집중되는 동안 주민들은 생존의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북한식 “강국”의 실상이다.
김정은은 “사상과 신념은 물리적 힘의 한계도 뚫는 전투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군사적 합리성보다 이념적 충성을 우선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현대전은 과학기술, 정보, 지휘통제, 병참, 국제환경이 결합된 복합적 영역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전히 병사와 지휘관에게 ‘사상혁명’과 ‘주적의식’을 강요한다. 이는 군을 현대화하겠다는 말과 모순된다. 무기체계는 현대화를 말하면서 정신세계는 냉전적 적대와 수령숭배에 묶어두는 것이다.
이번 보도는 또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을 보여준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전군의 사·여단 지휘관을 불러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군사조직 개편과 제1선 부대 강화를 언급했다는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 군 지휘체계 재정비와 결속 강화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변화한 국제정세,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속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군사적 선택지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길이 아니라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길이다.
북한은 늘 “전쟁억제”를 말하지만, 그 억제의 방식은 평화 구축이 아니라 무기 증강과 적대 고취다. 진정한 전쟁억제는 군사적 위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화 채널, 위기관리 장치, 투명성, 상호 신뢰, 주민 삶의 안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 모든 것을 외면한 채 군대와 당, 지도자에 대한 충성만 반복하고 있다.
이번 전군 지휘관 회합은 북한이 당분간 군사노선을 완화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핵과 미사일, 전방부대 강화, 군사조직 개편, 사상무장 강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 내부 행사가 아니라 한반도 정세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다.
북한 정권은 주민에게는 고난을 요구하고, 군에는 충성을 요구하며, 외부 세계에는 위협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 과시와 충성 경쟁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인민의 삶을 희생시켜 만든 강군은 결국 체제 보위의 도구일 뿐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말하는 “강한 시대”가 주민의 배고픔과 자유의 박탈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것은 강함이 아니라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김정은의 이번 지휘관 회합은 북한 체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준다. 평화가 아니라 대결, 민생이 아니라 군사, 국민이 아니라 수령을 앞세우는 체제. 바로 그것이 이번 보도 속에 감춰진 북한의 현실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