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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전기와 연유 없이 관수” 선전

2026-06-08 11:02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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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난·연료난의 일상화를 기술 자립의 미담으로 둔갑시켜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조선신보는 황해남도 신천군의 일부 농장에서 전기와 연유를 전혀 쓰지 않고 밭관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노동신문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 것에 따르면 8일 “신천군에서 무동력수차식물뽐프를 제작설치하여 덕을 보고 있다”며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과학자들의 지원으로 새길농장 작업반들에 무동력 물펌프가 설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서 이 장치는 흐르는 물의 에너지를 이용해 수차를 돌리고, 그 힘으로 물을 퍼 올려 주변 밀밭에 관수를 하는 방식이다. 전기와 연유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북한 농업의 기술 혁신을 보여준다기보다, 오히려 농촌 현장에서 전력과 연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드러내는 단면에 가깝다.

무동력 펌프가 ‘성과’가 된 현실

농업용 관수는 현대 농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산 기반이다. 정상적인 농업 체계를 갖춘 국가라면 전력, 양수 설비, 관개 수로, 배수 체계, 농업용 연료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매년 가뭄과 홍수, 전력난과 연료난이 반복되면서 농업 생산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와 연유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표현은 기술적 자랑으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전기와 연유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말에 가깝다.

무동력수차식 물펌프는 특정 조건에서는 유용할 수 있다. 흐르는 물이 있고, 수량이 일정하며, 물을 끌어올릴 높이가 제한적인 지역에서는 보조적 관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전국적 농업 생산의 돌파구처럼 선전하는 것은 과장이다. 물길이 없는 밭, 계절별 유량 변화가 큰 지역, 고지대 농경지, 대규모 농장에서는 적용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절약인가, 에너지 부족의 고백인가

신보는 이번 사례를 “경제적 효과성”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전기와 연유를 쓰지 않으니 비용이 적게 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농업 현장에서 전기와 연유를 아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애초에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못해 대체 수단에 의존해야 한다면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농촌에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고, 농기계와 양수 설비가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무동력 펌프는 선택 가능한 보조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북한 보도에서는 이것이 마치 획기적 성과처럼 제시된다. 이는 농업 현장의 기본 인프라 부족을 기술 미담으로 덮는 전형적인 선전 방식이다.

결국 “전기와 연유 없이 관수”라는 구호는 자력갱생의 성과라기보다, 전력망과 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표현에 가깝다.

과학자 동원의 이면

신보는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과학자들이 신천군에 무동력수차식 물펌프를 도입하도록 도왔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을 농업 현장에 적용하려는 노력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와 지원이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체계적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과학자와 기술자를 ‘현장 지원’에 동원하는 방식으로 각종 성과를 선전해왔다. 그러나 개별 농장에 특정 장치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식량난의 구조적 원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필요한 것은 농업용 전력의 안정 공급, 비료와 농기계 부품의 보장, 수리시설의 현대화, 시장 기능의 정상화, 농민의 생산 의욕을 높이는 제도 개혁이다.

이런 근본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일부 농장에 설치된 무동력 펌프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농민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되, 체제 선전은 경계해야

신천군 새길농장 작업반들이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물을 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현실적인 고충을 반영한다. 현장의 농민과 기술자들이 부족한 자원 속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는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노력이 체제의 성과로 둔갑하는 순간, 농민의 고통은 가려지고 선전만 남는다. 북한 매체는 “덕을 보고 있다”, “경제적 효과성이 높다”는 표현을 앞세우지만, 정작 왜 농장들이 전기와 연유를 마음껏 쓰지 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왜 농업용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지, 왜 연료 부족이 반복되는지, 왜 관개 체계가 여전히 취약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침묵이야말로 이번 보도의 핵심이다.

자력갱생 구호로는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은 농업 문제를 말할 때마다 자력갱생, 과학농사, 애국심, 집단주의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식량 문제는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농업은 전력, 연료, 비료, 종자, 기계, 물류, 시장,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종합 산업이다.

무동력수차식 물펌프는 한 농장의 작은 보조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농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해법처럼 선전되어서는 안 된다. 전기와 연유를 쓰지 않는 관수 장치를 자랑하기 전에, 북한 당국은 왜 농민들이 정상적인 전력과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진짜 성과는 일부 장치를 설치했다는 보도 사진이 아니다. 농민들이 매년 반복되는 가뭄과 전력난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 농업에 필요한 것은 선전용 ‘무동력 성과’가 아니라, 농민의 삶과 식량 생산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구조 개혁이다.

전기와 연유 없이 물을 퍼 올린다는 보도는 겉으로는 절약과 창의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에너지 빈곤, 농업 인프라의 낙후, 그리고 주민의 고통을 성과로 포장하는 북한식 선전의 오래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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