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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일과 가족의 생사를 묻는 손피켓 - 피랍탈북인권연대 |
한 사람이 사라졌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알 수 없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했던 북한 주민 김성일 씨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이들의 운명을 확인해 달라는 진정서가 10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됐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 이 절박한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진정서를 제출한 도희윤 대표와 김 씨의 인연은 2014년 시작됐다. 그해 10월 23일 인터넷 메신저로 직접 교신한 두 사람은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 민주적 미래를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이들이 형과 아우가 된 바탕에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소박하면서도 절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서에 따르면 김 씨가 북한에 들어간 뒤 활동이 발각됐다는 정황이 전해졌고, 2017년에는 북한 선전매체에 그의 실명과 영상, 외부 접촉 관련 자료가 공개됐다. 이후 연락은 끊겼다. 지금까지 그의 생존 여부와 소재, 체포·구금·처형 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김 씨가 처형됐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다고 확정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진정서 역시 이를 구분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로 만드는 것은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하려는 노력마저 멈춰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기간 이어진 불확실성이야말로 국가 차원의 사실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김 씨가 북한 주민의 존엄과 자유를 고민했다는 사실은 그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북한 주민도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사회가 나아갈 길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의 사람과 대화하고 다른 미래를 상상했다는 이유로 생명과 자유를 위협받는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억압한 권력이다.
가족의 운명은 더욱 절박하다. 배우자와 자녀는 누구의 소유물도, 정치적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부속물도 아니다. 가족관계만을 이유로 구금하거나 강제로 이주시키고 삶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당시 미성년이었던 자녀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은 별도로 살펴야 한다. 김 씨 한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 모두의 안전과 처지를 확인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번 진정은 북한에 직접 조사관을 보내 당장 모든 진실을 밝혀내라는 요구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가진 자료를 확인하고, 통신기록과 공개 영상, 관련 증언을 대조하며, 국제인권기구와 협력해 가능한 조치를 취해 달라는 요청이다. 접근의 한계가 있다는 사정과 할 수 있는 일까지 포기하는 태도는 구분돼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서의 실질적인 요구를 검토해야 한다. 관계기관이 무엇을 파악하고 어떤 조치를 해왔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권고와 의견표명을 통해 정부의 대응을 이끌어야 한다. 진정의 개별 조사에 제약이 있다면 정책 검토와 관계부처 협력 등 가능한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인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기관 사이를 맴돌다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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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는 도희윤 대표 - 피랍탈북인권연대 |
정부도 통일부·외교부·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의 자료와 대응을 연결해야 한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관련 인권기구에 사건 정보를 전달하고, 각 절차에 맞는 협력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사 과정에서는 북한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가족과 관련자의 신원이 불필요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생사를 확인하려는 행동은 당사자의 안전을 지키는 원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담은 『남북 혁명가의 대화』는 김성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희망을 품고 살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제 그 기록은 한 사람의 존재를 증언하는 데서 나아가, 그의 행방을 끝까지 묻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도 대표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의 가능성만이 아니다.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사이 김 씨의 존재와 고통이 잊히는 일이다. 그 두려움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살아 있다면 생명과 자유를 지킬 길을 찾고, 희생됐다면 사실과 경위, 책임을 밝혀야 한다.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고통 역시 기록하고 구제의 길을 찾아야 한다.
김성일과 그의 가족은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이 물음을 진정서의 마지막 문장으로 남겨두지 말고, 국가가 답을 찾아야 할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