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학자 톰 홀랜드(Tom Holland)가 『도미니언』(Dominion)을 출간한 지 7년이 지났다. 이 책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으며, 홀랜드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가 서구인의 정신세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홀랜드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논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할 때면 자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성경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어느 정도는 파라오 편이거나, 네부카드네자르 편이거나, 본시오 빌라도 편이었습니다. 늘 거들먹거리는 거대한 제국들의 편에 섰지요. 그런 제국들이 훨씬 더 화려하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의 신들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보다 더 매력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교는 “마치 해가 떠오르기 전에 달빛이 희미해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다지 흥미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작가가 된 홀랜드가 그리스인과 로마인, 스파르타인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인물들과 문화가 그에게 근본적으로 낯설고, 심지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덕적 토대에는 연민과 자비가 결여되어 있었다.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인간의 권리라고 부를 만한 것에도 무관심했다. 그것은 홀랜드 자신과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가치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제가 도달한 결론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홀랜드의 이러한 깨달음은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신작 소설 『아그리파』(Agrippa)를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해리스는 2024년 흥행 영화의 원작이 된 『콘클라베』(Conclave)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17편의 소설을 출간했으며, 그 가운데 다섯 편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해리스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대 로마의 역사에 깊이 몰두했으며, 그 과정에서 로마인의 정신세계에도 깊숙이 들어갔다. 해리스가 그려 내는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는 악티움 해전의 승리자이자 최초의 판테온을 건설한 인물로,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시대를 초월하는 몇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다. 용기와 능력, 겸손과 금욕적 인내가 그것이다. 우리는 그의 탁월한 계획과 건설 업적을 존경할 수 있다. 전쟁 중에 보여 준 상대적인 절제와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태도 역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결국 그 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그 세계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의 경력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옥타비우스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옥타비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이자 그가 지명한 후계자였다.
훗날 아우구스투스가 되는 옥타비우스는 새로운 카이사르가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때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신이 철저하게 무자비하며 어떤 도덕적 거리낌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그리파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의 곁을 지켰다.
톰 홀랜드는 이러한 인물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저는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살아 보려고 애쓰는 일이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들은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100만 명을 죽이고 또 다른 100만 명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일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로버트 해리스가 되살려 낸 세계에서 전쟁 포로들은 장부에 기록된 불편한 숫자처럼 취급된다. 복수의 대가를 맞춰야 할 필요가 생기면 언제든 지워 버릴 수 있는 숫자들이다.
정치인들의 생사는 권력의 음악이 멈추는 순간 그들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느냐, 그리고 황제가 희생양을 찾을 때 누구를 지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동안 이름 없는 노예들은 문장 하나가 지나가는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주인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어떤 일을 수행하도록 호출될 뿐이다. 그들이 인격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은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혼인을 맺고 해소하는 일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진다. 후대의 가장 냉혹한 왕실 정략결혼 주선자들조차 얼굴을 붉힐 만큼 가차 없는 방식이다. 성행위 자체도 단순한 육체적 교접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한때 옥타비우스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는 로마의 포룸에 공개적으로 게시되었다. 해리스는 그 편지에 담긴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네 성기를 어디에, 누구에게 집어넣느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톰 홀랜드가 지적했듯이, 로마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신체의 어느 구멍에든 성기를 삽입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 역시 그리스도교에 의해 뒤집혔다. 홀랜드는 『도미니언』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인간의 몸은 거룩한 그릇이라는 바오로의 확고한 가르침이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여성들은 로마 세계에서는 대체로 누리지 못했던 존엄성을 얻게 되었다. 『아그리파』는 내게 『도미니언』과 나란히 읽을 만한 일종의 소설적 동반 작품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로마인들의 삶의 방식을 균형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들의 잔혹성을 축소하려 하지도 않고, 과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두 책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역사적 상상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의 전사 아그리파가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스도교화된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와 같은 전사 계급에 속한 남성들이 창백한 얼굴에 정수리의 머리를 깎은 수도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하느님의 휴전’(Truce of God) 규정에 따라 수요일 저녁부터 다음 주 월요일 새벽까지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기사 서임식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의식에서는 허리에 흰색 허리띠를 둘러야 한다. 그 허리띠는 육체의 정욕을 억제해야 할 의무를 상징한다. 그리고 교회법 학자가 그들에게 혼인의 불가해소성 교리를 설명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로마 전사의 정신세계에서 이러한 의무와 규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가 그려 낸 아그리파처럼 어떤 면에서는 고결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배 질서 아래 살아가는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의 그리스도교화된 후대 전사들, 곧 기사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때는 기이하게 여겨졌을 이러한 관념들과, 그것들이 불러일으킨 도덕적 양심의 가책은 이제 실제로 받아들여지고 실현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