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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당 제9차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관철을 내세우며 또다시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회의 결과를 전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드러난 것은 경제 회생의 구체적 해법이 아니라, 익숙한 충성 구호와 성과 부풀리기, 그리고 책임 회피성 정치 수사뿐이었다. 민생과 생산의 실질적 위기를 해결해야 할 내각이 정작 보여준 것은 ‘집행’이 아니라 ‘선전’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회의는 3일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박태성 내각총리와 김덕훈 제1부총리, 박정근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북한 매체는 1분기 사업 정형을 총화하고 김정은의 시정연설 과업을 “드팀없이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토의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정작 보도의 핵심은 정책 실패에 대한 성찰이나 구조적 문제 진단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노선이 “휘황한 진로”이며 각 부문이 “성과적으로 완수”했다는 상투적 찬양 일색이었다.
북한식 경제회의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 진단이 사라져 있다는 점이다. 이번 보도에서도 식량 사정이 어떤지, 전력난은 얼마나 심각한지, 지방 공업과 주민 생활이 실제로 얼마나 개선됐는지에 대한 객관적 수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1.4분기 인민경제계획이 성과적으로 완수되였다”는 표현은 등장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생산했고 그 성과가 주민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계획 달성 여부를 판단할 독립적 기준도, 외부 검증도 없는 북한 체제에서 이런 발표는 사실상 체제 선전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원리와 수자를 중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북한 경제 운영이 원리와 수자보다 정치 충성 경쟁과 무리한 목표 설정에 좌우돼 왔음을 자인하는 표현에 가깝다.
경제는 과학과 통계, 생산성과 효율의 문제인데, 북한은 늘 정치적 구호와 충성의지로 이를 덮어왔다. 그 결과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 비효율적 자원 배분, 지방 경제의 피폐화, 그리고 주민 생활고의 심화였다. 그런데도 책임 있는 정책 전환보다 다시금 “비상한 혁명열, 애국열, 투쟁열”을 강조하는 것은 실패한 동원경제를 또 한 번 반복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북한 매체가 상원과 천성 등지의 “증산경쟁운동”을 치켜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증산경쟁은 북한이 경제난에 직면할 때마다 꺼내드는 낡은 수법이다. 기술 혁신과 제도 개혁, 에너지·원자재 공급 정상화 없이 노동 강도와 충성 경쟁만 부추겨 생산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식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실패를 반복해 왔다.
생산 현장의 실질 조건을 바꾸지 않은 채 ‘봉화’와 ‘돌파구’만 외치는 것은 결국 통계 조작과 보여주기식 실적 쌓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각의 역할이 행정 실무기구가 아니라 당 결정을 전달·집행하는 하부기관으로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박태성 총리는 경제 총괄 책임자로서 독자적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김정은 시정연설의 해당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내각은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전문 행정기관이어야 하지만,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하달하고 충성 이행을 독려하는 정치기구로 기능할 뿐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정책 실패의 책임은 사라지고, 실무 관료들은 현실적 판단보다 상부 눈치 보기와 충성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회의 형식이 화상회의였다는 점도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적 통치 기법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형식의 디지털화가 곧 행정의 현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산 현장의 고질적 병폐와 주민 생계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화면 속 결의와 보고만으로 경제가 살아날 리 없다. 화상회의는 편의적 수단일 뿐,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장 실사와 책임 검증 없이 회의만 반복하는 관료주의가 더 강화될 우려도 있다.
결국 이번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는 북한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보다, 북한 정권이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 경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은 외면한 채 성과를 자찬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도와 구조가 아닌 간부들의 정신력 부족으로 돌리며, 해법으로는 또다시 동원과 결의를 내세우는 방식이다. 이는 경제 회복의 전략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언어다.
북한이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주민 생활을 개선하려 한다면, 회의문에 등장하는 정치 수사부터 걷어내야 한다. 계획 완수의 구호보다 생산과 공급의 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충성 경쟁보다 제도 개혁과 자율성 확대, 책임 행정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그런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각은 경제를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반복 낭독하는 확성기에 가까웠다. 회의는 거듭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