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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이치 일본 총리 |
일본의 ‘국가정보회의’ 창설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하고 참의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정보회의를 설치하고, 그 사무국 격으로 ‘일본판 CIA’로 불리는 국가정보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조직을 이르면 7월 출범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으며, 국가정보국은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외무성, 공안조사청 등 여러 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요구하고 종합할 수 있는 핵심 정보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이 아니다. 동북아 안보 지형의 변화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응답이다. 지금 동북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국의 군사 팽창과 회색지대 공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노골화된 반서방 연대가 맞물리며 냉전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북·중·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틈을 파고들고 있으며, 군사력뿐 아니라 여론전, 사이버 공격, 경제 압박, 정보 공작을 결합한 복합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에 맞설 자유진영의 정보 대응 체계는 충분한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국가정보원이 정권의 변화와 정치적 논란 속에서 대공수사권과 정보 기능을 둘러싼 혼란을 겪으며 사실상 정상적인 대북·방첩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우려가 커져 왔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공작을 멈추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각종 영향력 행사와 정보 수집 활동을 확대하는데, 정작 한국의 정보기관은 정쟁의 한복판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정보 사령탑을 강화하고, 나아가 스파이 방지 법제까지 논의하는 것은 동북아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그동안 전후 체제의 제약과 국내 정치적 반발 탓에 중앙집중형 정보기관 창설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낡은 금기와 평화주의적 착각만으로 국가를 지킬 수 없는 시대다. 정보전은 이미 전쟁의 전초전이며, 방첩은 민주국가의 생존 조건이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있다.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는 국가정보국 창설이 국민 감시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정보기관의 권한은 민주적 통제와 법적 견제 없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정보기관은 국가를 지키는 기관이지, 국민을 억압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점에서 일본은 국회 감시, 사법적 통제, 정치적 중립성, 정보 남용 방지 장치를 분명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정보기관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로 흐르는 것은 위험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정보기관을 갖는 것은 전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전체주의 세력의 침투와 공작을 막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더 정교하고 강력한 정보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문제는 정보기관의 존재가 아니라, 그 권한을 어떻게 법치와 민주적 통제 안에 둘 것인가이다.
스파이법 제정도 마찬가지다. 외국 세력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빼내거나, 전략 산업과 안보 정보를 유출하거나, 여론과 정치 과정에 은밀히 개입하는 행위를 처벌할 법적 장치가 없다면 국가는 스스로 문을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간첩’이라는 말이 냉전적 낡은 용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오늘의 간첩은 군사기밀만 훔치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기관, 기업, 언론, 시민단체, 정치권, 온라인 여론 공간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복합적 행위자가 바로 현대의 스파이다.
북·중·러의 전체주의적 폭주는 이제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 위협은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겨냥하고, 중국의 군사적 팽창은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체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국제질서 파괴의 선례를 만들었고,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통해 동북아 안보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 세력의 공통점은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파고든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를 여론조작의 통로로, 개방경제를 기술 탈취의 기회로, 정당정치를 영향력 공작의 무대로 악용한다.
일본판 CIA 창설은 동북아 정보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 조치가 북·중·러를 향한 명확한 경고가 되려면, 일본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스파이 방지 법제까지 정비해야 한다.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답게 그 권한을 법치와 의회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강한 정보기관과 강한 민주적 통제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이 함께 있을 때 국가안보와 시민의 자유가 모두 지켜질 수 있다.
동북아에는 지금 북·중·러의 전체주의적 폭주를 실질적으로 억제할 정보 방파제가 절실하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일본의 정보 역량 강화는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유진영은 더 이상 순진해서는 안 된다. 전체주의는 빈틈을 먹고 자란다. 스파이망은 방치하면 뿌리내리고, 공작은 묵인하면 제도가 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