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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연합뉴스 |
중국 인권운동가 둥광핑이 마침내 캐나다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고무보트 한 척에 몸을 싣고 서해를 건넌 그의 탈출은 한 개인의 극적인 생존담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 공산당 강점기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둥광핑은 단순한 밀입국자가 아니었다. 그는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쫓겨나고, 구금되고, 감시당한 중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다. 그가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 중국의 인권 현실을 증언한다.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한 시민이 고무보트에 의지해 망망대해로 도망칠 이유가 없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탄압이 일반 시민에게만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인권변호사들마저 체포와 구금, 자격 박탈, 감시와 협박의 대상이 되어 왔다. 법률가가 법을 말할 수 없고, 변호사가 피압박자의 권리를 변호했다는 이유로 탄압받는 사회라면, 일반 공민의 생명과 자유는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변호사에게도 이 정도라면,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은 얼마나 더 깊고 어두운가.
둥광핑 사건은 우리에게 중국 내 인권탄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당연한 과제를 남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침묵하거나 축소해 왔다.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와 외교라는 이름으로 더욱 쉽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독재의 폭력은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제송환, 해외 감시, 반체제 인사 압박은 이미 국제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한국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다행히 둥광핑은 중국으로 돌려보내지지 않았다. 캐나다 외교당국, 한국 정부, 변호인단, 유엔난민기구,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안도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강제송환 우려가 제기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의 인권 감수성이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울트라 최강’의 인권 감수성을 자부하는 듯한 한국의 민변은 왜 이런 문제 앞에서 그토록 조용한가. 국내 정치 사안과 특정 진영의 권리 문제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입장을 내던 이들이,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과 중국 민주인사의 생존 문제 앞에서는 왜 선명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침묵이 아니라면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인권은 진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독재정권의 눈치를 보며 선택적으로 외치는 구호가 될 수 없다.
중국 인권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둥광핑이 서해를 건넜고, 권평이 수상 오토바이를 타고 한국 앞바다에 도착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역의 현실이 이미 인권과 독재의 최전선이 되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정치적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은 선택이 아니라 문명국가의 책무다. 출입국 질서도 중요하지만, 독재의 손아귀로 사람을 되돌려 보내지 않는 일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권의 문제다.
둥광핑의 캐나다행은 작은 승리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 인권탄압의 현실을 덮는 결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중국 내 민주인사, 인권변호사, 종교인, 소수민족, 양심수들의 처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자유를 빼앗긴 이들의 절규에 침묵한다면, 그 자유 역시 언젠가 자기 정당성을 잃게 된다.
고무보트 한 척으로 서해를 건넌 둥광핑의 항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독재의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을 범법자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향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온 인간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 앞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와 법률가 단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사건의 교훈은 분명하다. 인권은 선택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유는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 한 인간의 절박한 외침 앞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