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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제15차 전국교원대회와 관련해 교원들을 치켜세우면서도, 교육의 성과와 과제를 김정은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시키는 선전 방식을 드러냈다.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의 배움보다 지도자의 ‘믿음과 사랑’을 앞세워 교육을 정치적 충성의 영역으로 묶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 매체는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갈 일념 안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평양 중구역 창전소학교 교육자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글은 김정은이 전국교원대회에서 교원들을 “애국자중의 애국자들”이라고 평가했다며, 교육자들이 그의 기대에 보답해 교육강국 건설에 이바지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보도의 중심에는 정작 교실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교재와 교육시설은 충분한지, 교사들의 생활과 연구 여건은 어떻게 보장되는지 등 교육의 질을 판단할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지도자의 은혜와 교원의 감격을 반복하는 표현들이 채웠다.
교원 존대의 출발점은 찬사가 아니라 여건 보장
교사를 사회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존중이 수사에 머무를 때다. 교원에 대한 예우는 안정적인 생활, 충분한 수업 준비 시간, 교육에 필요한 자원과 전문적 판단의 존중으로 확인돼야 한다.
제공된 보도만으로 북한 교원들의 실제 처우나 해당 학교의 교육 여건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교원을 극진히 존대한다고 강조하는 글에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교육자를 높이 세운다’는 선언과 교육자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 사이의 거리를 검증할 정보가 빠져 있는 것이다.
교원의 헌신을 요구하면서 국가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면, 찬사는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요청하는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
‘교원혁명가’라는 호칭에 가려진 교육의 자율성
보도에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은 ‘교원혁명가’다. 교사를 지식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전문가로 설명하기보다 국가와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에는 공동체의 가치와 책임을 가르치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특정 지도자의 뜻을 받드는 일이 교육자의 핵심 사명으로 제시되면, 교육적 판단은 정치적 충성에 종속될 위험이 커진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능력보다 정해진 권위에 동의하는 태도가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도 교육자들의 의지는 김정은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학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중심에 놓아야 할 교육의 목적이 지도자에게 무엇을 돌려드릴 것인가라는 구도로 바뀌어 있다.
‘교육강국’은 교실의 변화로 입증해야
평양의 한 학교를 소개한 짧은 보도로 북한 전체 교육의 실상을 평가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에 ‘교육강국’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내세우려면 지역과 학교별 교육 여건, 교원 확보 상황, 학생들의 학습 성과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확인 가능한 성과보다 교육자들의 충성과 감격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교육정책을 평가할 근거를 제공하기보다 지도자의 권위를 재확인하는 데 무게를 둔 셈이다.
교사는 권력의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을 키우는 사람이다. 북한 당국이 교육자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찬양의 단상에 올려세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가르칠 여건과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강국의 증거는 지도자를 향한 찬사의 크기가 아니라, 학생이 얼마나 배우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지에 있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