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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경기도 평택에 자리 잡은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넘어, 미국의 대중국 인도·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거점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평택 현지 취재를 통해 캠프 험프리스의 전략적 역할이 한반도 방어에서 동북아시아 전체를 관할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중 전략 경쟁과 북·중·러 군사협력이 동시에 심화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도 한층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는 이러한 변화를 전략적 중심축의 이동, 동북아 안보 구도의 재편,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들의 한반도 복귀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했다.
서울 남쪽에 들어선 거대한 ‘미국 도시’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60㎞ 떨어진 캠프 험프리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해외기지로 평가된다. 약 1,400㏊의 부지에 군인과 군무원, 가족 등 4만 명 이상이 생활하고 있다.
기지 안에는 병영과 학교, 병원, 교회, 상점, 체육시설, 주거지역이 들어서 있어 하나의 소도시를 연상시킨다. 철조망과 검문소 너머로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 체계와 장갑차, 헬리콥터들이 배치돼 있으며, 아파치 공격헬기와 블랙호크 기동헬기가 수시로 기지를 오간다.
캠프 험프리스에는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핵심 지휘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을 수용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중추기지인 셈이다.
기지는 북한 장사정포의 주요 배치지역에서 약 110㎞ 떨어져 있다. 과거 서울 용산에 있던 주요 미군 지휘시설을 평택으로 이전한 것도 북한의 직접적인 포격 위협에서 벗어나 지휘체계의 생존성을 높이려는 목적이 컸다.
그러나 최근 캠프 험프리스의 역할은 더 이상 한반도 방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북한 억제 기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추로
1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캠프 험프리스는 당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하면서 이 기지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겨냥한 전략적 거점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 남중국해에서의 충돌 가능성,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훈련 확대가 서로 맞물리면서 한반도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연결점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일본과 괌, 하와이, 필리핀을 연결하는 미군의 서태평양 방어망 한가운데에 있다. 유사시 한반도뿐 아니라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응하는 지휘·정보·군수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인 호주 육군의 스콧 윈터 중장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국제안보 환경이 수십 년 만에 가장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중동에서도 충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동북아시아에서 또 다른 전쟁이 발생한다면 국제사회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변화된 위협에 맞춰 억제전략도 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심장에 꽂힌 단검”
주한미군사령관 자비에 브런슨 대장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아시아의 심장에 꽂힌 단검”에 비유한 바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는 수도권과 주요 군사시설에 가까우면서 서해와 동중국해, 일본 열도까지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한국에 배치된 미군 전력이 북한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는 전력으로 전환될 경우, 베이징이 느끼는 전략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의 최우선 임무가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작전개념과 연합훈련, 무기 배치가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체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될 경우, 한반도에 배치된 전력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의 위기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이 같은 움직임을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유지돼 온 주한미군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지역전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 베이징의 시각이다.
한국에 커지는 전략적 부담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는 한미동맹의 억제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국이 미·중 군사대립의 최전선에 놓일 수 있다는 위험도 안고 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주한미군이 이에 관여할 경우, 중국은 한국의 군사시설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복 대상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 경제는 중국 시장과 공급망에 여전히 상당 부분 연결돼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주한미군의 역외 역할과 한국군의 개입 범위, 중국의 예상 대응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재명 정부로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동시에 한미동맹의 변화된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중 사이에서 단순한 ‘균형’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제어하지 않고,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와 주한미군 전력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유엔군 회원국들도 한반도에 다시 주목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들도 평택을 중심으로 군사적 관여를 확대하고 있다.
독일은 2024년 유엔군사령부에 정식 가입했으며, 프랑스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1명까지 줄였던 파견 장교를 4명으로 늘렸다.
프랑스 유엔군사령부 소속 올리비에 르클레르 대령은 젊은 장교들이 한반도라는 전략적 지역에서 근무하며 미군 및 다른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한반도 정세가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프랑스의 인도·태평양 전략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유엔군사령부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창설됐다. 일반적인 유엔 평화유지군과는 성격이 다르며, 미군 장성이 사령관을 맡고 있다.
현재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의 유지와 유사시 회원국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위한 제도적 기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심화되고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엔군사령부의 기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장교들의 평택 배치는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대대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역사적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도 갖는다.
한반도 방어와 중국 견제의 이중 역할
오늘날 캠프 험프리스는 북한의 남침과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는 한미연합방위체계의 핵심인 동시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는 지역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위치다. 일본과 괌에 배치된 미군 전력과 연계해 동북아시아의 정보·지휘·군수망을 구성할 수도 있다.
반면 한국은 강화된 미국의 억제력을 활용하면서도 미·중 충돌의 최전선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국가적 전략을 정교하게 수립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한미동맹의 목적과 주한미군의 역할에 관한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인지에 있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는 이제 북한을 바라보는 전초기지만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겨냥하는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거대한 지휘소이자,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을 좌우할 전략적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