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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북한 청년절 경축 청년학생 무도회 |
북한이 ‘청년절’을 맞아 청년층을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치켜세우며 이른바 ‘청년중시정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매체가 강조하는 청년의 역할을 들여다보면 청년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창의성보다는 노동당에 대한 충성과 국가가 지정한 경제·건설 현장에 대한 헌신이 우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무비의 혁명성과 애국충의심을 지닌 청년대군은 우리 당과 국가의 자랑이고 힘이다’라는 제목의 1면 사설을 통해 청년들을 “당의 충직한 전위대이자 믿음직한 후비대”라고 규정했다.
신문은 특히 “당에 대한 충실성은 우리 청년들의 첫째가는 사상정신적 특질”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의 첫 번째 덕목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자립성, 창의성을 꼽은 것이 아니라 ‘당에 대한 충실성’을 내세운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청년정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신문은 청년들이 국가 방위력 강화와 시멘트 증산, 발전소 건설을 비롯해 평양 신도시 전위거리와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등 각종 국가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북한 매체에서 반복되는 ‘청년들의 자원’이나 ‘탄원’, ‘돌격대 활동’이 실제 개별 청년들의 자유로운 직업 선택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조직적·사회적 압박 속에서 이뤄지는 동원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건설장과 광산, 농촌, 대형 국책사업에 청년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면서 이를 ‘애국’과 ‘영예’, ‘위훈’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북한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전형적인 대중동원 방식이다.
북한은 청년을 국가의 미래라고 강조하면서도 그 미래의 방향을 청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기보다는 당이 결정한 사업에 청년을 투입하는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외부 청년은 ‘타락’, 북한 청년은 ‘순수’.. 낡은 체제 우월 선전
노동신문은 이날 외부 사회에 대해서도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신문은 외부 세계의 청년들이 “극도의 인간증오와 황금만능의 독소, 타락과 염세에 물젖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북한 청년들은 “사회와 집단 앞에 성실하며 미래를 위해 투신하는 순수하고 견실한 청년들”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난과 정보통제가 지속되는 북한 내부의 현실은 외면한 채 외부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만을 부각하고 북한 청년들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체제 우월성 선전이다.
무엇보다 북한 청년층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 배급체계보다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 속에서 성장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라는 점은 당국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시장경제 활동에 익숙하고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며 외부 정보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높은 세대로 평가된다.
북한 당국이 청년절마다 유독 ‘충성심’과 ‘사상정신’, ‘집단주의’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세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청년들의 충성심이 확고하다면 매년 국가 차원의 대규모 정치행사를 열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끊임없이 확인시킬 필요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중시정치’라지만 핵심은 “당을 받들라”
노동신문은 별도의 정치용어 해설을 통해 ‘청년중시정치’를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청년들을 굳게 믿고 내세워주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해나가는 우리 당의 정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당이 작전하고 전개하는 모든 사업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중시’와 민주사회에서 말하는 청년정책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청년을 중시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형 건설공사와 생산현장에 청년들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직업, 거주와 이동, 문화생활 등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청년중시정치’는 청년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정책이라기보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충성 기반으로 청년층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과학기술 전시회·공연도 결국 ‘당 충성’으로 귀결
북한은 청년절을 전후해 대대적인 기념행사도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전국 청년 과학기술 성과 전시회’가 과학기술전당에서 개막해 각 지역 청년들이 내놓은 과학기술 성과 자료 1천800여 건이 출품됐다.
청년들의 과학기술 활동 자체는 북한의 산업과 경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열린 청년중앙예술선전대 공연의 제목이 ‘청춘들아 받들자 우리 당을’이라는 사실은 북한이 청년정책을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기술과 문화, 교육과 노동 등 청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이 결국 ‘당을 받드는 청년’이라는 정치적 목표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간부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청년운동사를 기념하는 청년운동사적관을 참관한 것 역시 청년절의 핵심이 청년 개개인의 삶보다는 수령 중심의 정치적 전통을 재확인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1927년 8월 28일 김일성이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며 1991년부터 이날을 ‘청년절’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1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북한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과거의 혁명사를 반복해서 학습하고 국가사업에 ‘전위대’로 동원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미래를 설계하며 세계의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권리가 오히려 청년의 미래를 위한 더 근본적인 조건이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청년을 “당과 국가의 자랑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면 청년들을 충성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전에 한 사람의 독립된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청년중시정치’라는 화려한 구호가 청년을 위한 정치인지, 아니면 변화하는 장마당 세대를 붙잡아 두기 위한 또 하나의 사상통제와 노동동원 논리인지는 북한 당국이 청년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가를 통해 판단해야 할 문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