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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제15기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른바 ‘국가의 부흥발전을 법률적으로 담보한다’고 선전하고 나섰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밝힌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을 들여다보면 ‘법에 의한 통치’라기보다 노동당의 결정을 법률이라는 형식으로 포장하는 ‘당에 의한 통치’의 실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관계자를 인용해 노동당 제9차대회가 제시한 새로운 투쟁강령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의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집권당의 ‘투쟁강령’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과연 독립적인 입법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국가의 최고주권기관이라는 명칭과 달리 실제 역할은 노동당이 정한 노선을 법률과 제도로 바꾸는 작업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북한은 제15기 최고인민회의부터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의 임기를 사실상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정치 일정을 정비했다. 당과 국가기관의 주기를 맞춤으로써 노동당이 정책을 결정하면 최고인민회의가 이를 법제화하고, 내각과 국가기관이 집행하는 구조를 더욱 체계화한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입법부는 행정부와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권의 정책이 잘못됐을 경우 제동을 걸고, 예산을 감시하며, 권력자의 자의적인 통치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 의회의 본질적 기능이다.
그러나 북한의 설명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먼저 노동당이 결정한다. 최고인민회의는 이를 법률적으로 ‘담보’한다. 이어 국가기관들이 집행한다. 입법부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의 정책 집행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을 맡는 구조다.
그렇다면 북한이 강조하는 ‘법률적 담보’라는 표현도 결국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한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당의 목표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국가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법이 권력자를 묶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법을 통치수단으로 사용하는 순간 ‘법치’는 사라지고 ‘당치(黨治)’만 남는다.
더욱이 북한 주민에게는 표현·언론·집회·결사의 자유는 물론 정권을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교체할 실질적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인민회의를 ‘최고주권기관’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현실과 제도적 외형 사이의 커다란 괴리를 보여줄 뿐이다.
북한이 진정 법률을 통해 국가 발전을 담보하려 한다면 노동당의 결정을 법제화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자의적인 처벌과 정치적 탄압을 금지하며, 사법기관의 독립을 보장하고, 국민이 권력자를 선택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에도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노동당과 최고인민회의의 정치적 시간표까지 맞추면서 당의 결정과 국가의 법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결국 제15기 최고인민회의의 역할 강화라는 선전 뒤에서 보이는 것은 의회의 독립이 아니라 ‘당의 국가화’, 법치의 발전이 아니라 ‘당 명령의 법제화’다.
북한이 아무리 최고인민회의를 ‘최고주권기관’이라고 부른들, 노동당의 결정을 거부하거나 김정은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없다면 그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라기보다 권력의 결정에 법률이라는 도장을 찍는 추인기관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이 당 위에 서지 못하고 당이 법 위에 군림하는 체제. 북한이 선전하는 ‘국가 부흥의 법률적 담보’가 실상은 ‘김정은 체제의 법률적 담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