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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의 신작 과학환상(SF)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조선신보 보도가 작품의 상상력을 북한 체제의 발전상을 과시하는 논리로 연결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과학기술로 자연재해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교육적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의 기술과 영웅적 활약을 현실의 발전을 입증하는 근거처럼 제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조선신보는 10월 9일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가 제작한 《나어린 도전자들》 제1부를 소개하며, 학생소년들이 “자기 힘과 기술”로 자연의 광풍을 길들이려는 용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조국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연결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제공된 보도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첨단기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만화가 있다는 사실과, 그 기술을 실제 사회에서 구현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화면에 펼쳐지는 미래도시는 현실의 발전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상상력을 소개하다가 체제 찬양으로
보도는 SF 문학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현실, 역사적 경험, 미래에 대한 이상을 반영하는 ‘시대의 거울’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 따른다면 작품을 소개할 때도 현실의 성취뿐 아니라 한계와 모순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제공된 대목에서 조선신보가 내놓은 현실 평가는 ‘비약적 발전’이라는 찬사뿐이다. 어떤 과학기술이 발전했는지, 그 성과가 주민의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자연재해 대응 능력은 얼마나 개선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작품의 내용과 현실을 비교하는 비평 대신, 작품을 통해 체제의 우수성을 확인하도록 유도하는 서술이다.
SF의 가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현재의 질서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데에도 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상상이 언제나 현 체제의 성공을 증명하는 방향으로만 해석된다면, 독자와 관객이 생각할 여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재난 극복을 어린이의 용기로 설명할 수 있나
학생들이 과학기술로 태풍에 맞선다는 설정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어린이에게 탐구심과 협동심을 심어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다만 현실의 재난 대응은 용기와 도전정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예보와 신속한 경보, 안전한 대피시설, 견고한 기반시설, 위험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을 보호할 책임을 맡은 기관의 준비와 대응이 중요하다. 어린 주인공의 활약은 극적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이를 현실의 발전상과 연결하려면 국가의 재난 대응 역량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제공된 보도에서는 이러한 질문보다 자연을 ‘자기 힘’으로 길들인다는 표현이 앞선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도 재난 대응에 필요한 제도와 책임은 드러나지 않는 셈이다.
미래상의 설득력은 현실에서 나온다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과학을 배우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기회는 소중하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의 창작 노력 역시 체제 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 폄하할 일은 아니다. 비판의 대상은 그 창작물을 구체적 검증 없이 국가 발전의 증거로 내세우는 보도 방식이다.
이번에 제공된 원문은 줄거리 설명 중간에서 끝나 있어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개된 소개 대목만으로도 조선신보가 가상의 미래와 현실의 성취를 손쉽게 겹쳐 놓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만화 속에서 태풍을 길들이는 장면을 그리는 것과 현실에서 주민을 재난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다. 북한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말하려면 화려한 화면에 대한 찬사보다, 그 기술이 주민의 안전과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미래상의 설득력은 선전 문구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 나온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