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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6년 세계 언론자유지수는 오늘날 언론 자유가 얼마나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장에 가깝다.
RSF는 올해 지수에서 전 세계 언론 자유의 평균 점수가 25년 조사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 대상 180개국 가운데 절반 이상이 처음으로 ‘어려운 상황’ 또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분류됐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언론 자유가 ‘좋은’ 국가에 거주하는 세계 인구의 비율이다. 2002년에는 세계 인구의 약 20%가 언론 자유가 양호한 국가에 살았지만, 2026년에는 그 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단순히 일부 독재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까지 포함한 전 지구적 후퇴가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RSF는 이번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국가안보법, 대테러법, 긴급입법, 전략적 봉쇄소송 이른바 SLAPPs 등의 남용을 지목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각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취재와 보도를 제한하는 법적 장치를 확대해 왔고, 이것이 언론의 공익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는 구조로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RSF에 따르면 2025년에서 2026년 사이 법적 환경 지표는 180개국 중 110개국에서 악화됐다.
올해 순위에서 노르웨이는 1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와 에스토니아가 뒤를 이었고, 프랑스는 25위로 ‘양호한 상황’에 분류됐다. 반면 미국은 7계단 하락한 64위에 머물렀다. RSF는 미국 내 정치권의 언론 공격, 언론기관에 대한 압박, 대외방송 예산 삭감 등이 언론 환경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미주 지역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등 여러 국가의 순위 하락도 두드러졌다. RSF는 라틴아메리카 일부 국가들이 폭력과 탄압의 악순환 속에서 기자들이 독립적 보도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이는 범죄조직의 위협과 국가권력의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역적 위기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하락도 심각하다. 니제르는 37계단 떨어진 120위를 기록하며 올해 가장 큰 하락폭을 보인 국가 중 하나가 됐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역시 군사정권 등장 이후 언론 자유가 크게 악화된 사례로 거론된다.
무장단체와 군사정부가 동시에 언론을 압박하면서 시민들이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 자체가 봉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176위로 추락했다. 언론인과 비판적 필자에 대한 탄압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시리아는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정치적 전환기에 들어가면서 177위에서 141위로 상승했다.
다만 이는 자유 언론의 완전한 회복이라기보다, 과거 극단적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제한적 변화로 해석해야 한다.
최하위권은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들이 차지했다. 러시아는 172위로, 테러·분리주의·극단주의 대응을 명분으로 언론인을 탄압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RSF는 2026년 4월 현재 러시아가 48명의 언론인을 수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178위, 북한은 179위, 에리트레아는 3년 연속 최하위인 180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178위는 특히 주목된다. 중국은 거대한 검열 체계와 국가안보 명분의 사법 탄압, 외신 통제, 인터넷 감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언론 환경 중 하나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국가가 모든 정보 유통을 독점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사실상 언론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곳으로 평가된다. 에리트레아 역시 독립 언론이 사실상 금지된 대표적 폐쇄국가다.
이번 RSF 지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론 자유의 위기는 더 이상 특정 독재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안보, 허위정보 대응,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언론을 제약하는 법과 정치적 압박이 확대되고 있다. 언론이 침묵하면 시민은 권력을 감시할 수 없고, 시민이 감시할 수 없는 권력은 언제든 폭주할 수 있다.
결국 언론 자유는 기자만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다. 세계 언론 자유가 25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 전체에 보내는 경고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면, 권위주의 체제는 더 대담해지고 진실은 더 쉽게 봉쇄될 것으로 보인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