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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59] 요한 바오로 2세와 미국

2026-06-04 06:4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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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1978년 10월 16일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었을 때,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은 미국 가톨릭교회에 대해 비교적 제한적인 경험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미국 교회 인사들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그 뒤 여러 해 동안 폴란드를 방문했다.

크라쿠프의 추기경이었던 그는 미국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 그중 한 번은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간 중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들에서 그가 보낸 시간의 대부분은 폴란드계 미국인 공동체와 함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직을 시작할 때 미국 가톨릭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다른 유럽 지식인들의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곧 미국 교회는 본당에서부터 의료 및 사회복지 시설, 학교,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에 이르기까지 부러움을 살 만한 기관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교회는 교양이 있기보다는 부유했고, 미국의 현상 유지 속에서 너무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요컨대 새 교황은 미국 교회에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1978년 당시 그 교회를 가톨릭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가능한 모델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25년 동안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 가톨릭 안에 불을 붙이는 데 도움을 준 쇄신 때문이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유럽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유럽을 이식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의 인식과 미국 교회 양쪽에서 일어난 변화는 1979년 10월 요한 바오로의 첫 미국 순례에서 시작되었다.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디모인, 시카고, 워싱턴에서 그가 이끌어낸 놀라운 반응은, 교회 안에,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 교황이 이전에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활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활력은 훗날 요한 바오로가 “새 복음화”라고 부르게 될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었다. 동시에 교황이 불러일으킨 열정은 보다 깨어 있는 미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제 방어적인 웅크림에서 벗어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파벌적 내분을 버리며, 세상을 거룩하게 하라는 공의회의 부르심을 실천해 나가야 할 때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 뒤 20년 동안 요한 바오로는 미국에서 복음적으로 활력 있는 가톨릭의 쇄신을 계속 고무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사회 교도권이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1995년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서 그가 선포한 생명 수호가 이른바 “선진” 세계의 나머지 지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미국에서 더 큰 공적 표현을 얻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요한 바오로에게 미국 건국이 자연 도덕법의 원리들에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그 원리들이 모든 인간 생명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과 무한한 가치라는 성경적 관념과 잘 조응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1989년부터 1991년 사이 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한 뒤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는 사실상 어떤 문화적 토대 위에서도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장치에 불과한가? 공산주의 이후 유럽의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유를 고귀하게 살아가는 법의 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에서 첫 번째 질문에 답했다. 자유로운 정치와 자유로운 경제가 개인 인간의 번영과 사회적 연대를 뒷받침하려면, 마음과 정신의 특정한 습관들, 곧 특정한 덕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정한 임계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나눈 수많은 시간의 대화를 바탕으로 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와 중부 및 동부 유럽의 다른 새롭게 스스로를 해방한 나라들이 공산주의 이후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배우기를 바랐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교황은 미국 안에서, 종교적 신념이 여전히 다수 시민의 삶을 형성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형성된 도덕적 논증이 공적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발전된 민주주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속주의가 헌법적으로 제도화된 프랑스가 아니었다. 또한 미국 공화국은 성경적 종교가 이미 오래전에 국가 문화와 공적 사안을 형성하는 힘을 상실한 영국이나 독일도 아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에서, 자신이 「백주년」에서 제시한 자유롭고 덕 있는 사회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은 교회가 활기찬 공적 도덕 문화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그 도덕 문화가 정치적·경제적 자유가 풀어놓은 거대한 에너지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회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그 실현 속에서 자유와 덕이 어떻게 함께 가는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향해 다가가는 지금,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 우리에게 그토록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제 국가적 양심 성찰에 대한 부르심처럼 보인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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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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