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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62] 골반 신학, 골반 정의

2026-06-07 08:4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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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원


최근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가톨릭 저술가 데이비드 깁슨은 교황 레오가 자신의 교회를 “골반 신학”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고 찬양했다.

이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는 낙태에서 LGBTQ 권리, 전통적인 정결 개념에 이르기까지 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병적으로 집착하며, 아마도 어떤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인 양 치부하는 표현이다.

비판자들의 정당성을 박탈함으로써 사상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어떤 표현이든 매력적으로 소비되는 우리의 게으른 ‘한마디 요약’의 세계에서, 이 표현은 이미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개신교권으로도 옮겨갈 것이다.

깁슨의 전제와 주장과는 달리,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골반” 문제들에 주목해야 할 분명하고도 항구적인 이유들이 있다. 구약성경은 성행위를 금기와 정결 예식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합법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는 신약성경으로도 이어진다. 성 바오로는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남자가 특별히 극악한 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가 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인간 몸의 성적 본성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데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사도 시대 이후의 세계를 보아도,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정경 이후 문헌 가운데 하나인 『디다케』는 낙태의 거부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핵심적인 정체성 표지로 삼는다. 사회학자이자 역사가인 로드니 스타크가 주장했듯이, 이는 초대 교회의 성장에 핵심적인 요소였다.

이 모든 것은 신학적으로 타당하다. 성행위는 성경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회적 유대이며(창세 2,24),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의 일부이기도 하다(창세 1,28). 실제로 창조적 가능성을 지닌 성교는 우리를 가장 하느님과 닮게 만드는 인간 행위이다.

간단히 말해, 성에 대한 태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핵심에 놓여 있다. 물론 세속 사상가들은 이를 거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깁슨처럼 가톨릭 신자임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교회의 가르침과 자기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로 여기는 책 모두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물론 “골반 신학”이라는 개념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성적 집착이 교회 안의 특정 부류 탓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목회자였을 때 나는 젊은 남성들과 인터넷 음란물 습관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런 것에 집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가 그것으로 포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그들을 만나기도 훨씬 전인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음란물에 중독되어 있었다. 낙태, 동성애 등과 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신자들을 지금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도 같은 일이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은 교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강조하는 것들이다.

나는 자신이 선택한 성적 일탈을 사적으로 탐닉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광고와 행진과 깃발을 통해 다른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바쳐진 한 달의 시작에 이 글을 쓰고 있다.

교회가 그것을 야기한 것이 아니다. 퀴어성을 기념하는 것은 교회의 전례력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이 현 시대의 전례력에 속한 것이다. 교회는 도덕적 혼란에 응답해야 할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도덕적 혼란의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악들이 결정한다.

나는 “골반 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에게 그들의 논리를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보라고 요구한다. 예컨대 법을 생각해 보라. 법이 성범죄를 다른 폭행과 질적으로 다르게 다룬다는 사실은, 서구 사회에 아직 공통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도덕적 직관 가운데 하나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주먹으로 치는 행위는 아무리 큰 피해를 입힌다 하더라도, 기소와 처벌에 있어서는 성폭행보다 덜 극악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왜 그런가? “골반 신학” 비판자들의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이것이 서구의 법 제정과 법 집행 문화가 “골반 정의”를 밀어붙이는 성 집착적 괴짜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골반 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골반 정의”라는 말도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속내가 드러나는 것이다. 당신은 몸의 형이상학에 관한 진지한 주장을 하기 위해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우리 사회에 그토록 큰 혼란을 초래한 성혁명가들에게 유용한 바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정치적으로 선택적인 수사법의 대안은, 정의와 신학 모두의 밑바탕에 놓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은 여러 인간 행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핵심을 건드린다. 몸의 성적 구성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데 중심적이다.

그러므로 그것과 관련된 행위는 범죄적이든, 합의에 의한 것이든, 결과를 낳는 것이든 고유한 중요성을 지닌다. 그것을 신학적으로든 사법적으로든 하찮게 만드는 것은 인간성 자체를 하찮게 만드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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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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