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終戰宣言) 이후에... 혹시 이런 일이?

- 북-미-중이 적극 호응할 거라 가정하면...
- ‘문주주의(文主主義) 시즌 2’는 확실?
- 북녘이 대량살상무기를 전부 포기하고...
- 평화협정으로 이어져 북진(北進)통일까지?

 

  한가위 연휴가 끝나서인지 지하철이 몹시 붐빈다. 평일임에도 여느 때보다 승객들이 더 많은 듯하다. 시청앞까지 가기 위해 회기역에서 환승을 했다. 복잡한 와중이지만, 눈치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스마트 폰을 꺼내서 들척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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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의 날짜는 2024년 9월 23일...  벌써 3년이나 흘렀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더군다나 그새 세상이 격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3년 전(前)도 이맘때쯤이었다. 2021년 9월 22일...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적인 돌림병의 와중에도 그 무슨 ‘소년단’을 이끌고 유엔 총회에 참석하셨었다. 다소 썰렁했던 유엔 총회장이었지만, 열과 성을 다해 연설문을 읽어대는 모습에 감동 먹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었다고 했다.

  진심을 다해서 ‘종전선언’을 역설하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여러 나라에서 호응을 해왔다. 물론 북녘의 총비서께서도 흔쾌히 수락할 뜻을 비췄었다. 무슨 꿍심인지야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몇 달 남지 않은 임기 중에, 열과 성을 다해서 양키나라와 뛔국을 설득하셨단다.

  국내에서는 돌림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구꼴통들이 시청과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 모여서 연일 극렬하게 반대를 했다. 하지만, 대가리 깨진 ‘문주주의자’(文主主義者)들의 헌신적인 성원과 대응에 힘입어 쉽게 제압되었다. 마침내...

 

  유엔 총회 연설이 있고 백방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신 끝에, 그해 ‘유엔데이’를 맞아 양키나라와 뛔국의 승낙을 받아내셨었다. 북녘 총비서야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이미 확약을 받아 놓았었다고 했다.

 

  그다음은 말마따나 일사천리(一瀉千里)... 2022년 임인년(壬寅年) 벽두에 그 바라고 바라던 ‘종전선언’(終戰宣言)을 이끌어 내셨다. 판문점에서 선언문이 낭독되는 순간... 그 장면은 두고두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어서 이 땅의 영구적 평화를 담보할 남-북-미-중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 또한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북녘의 총비서가 오히려 서두른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었고...

  영변의 핵시설이 해체되면서 '북녘의 비핵화(非核化)'도 첫 단추를 끼웠다.

 

 

  2022년 4월 3일 역사적인 날을 맞아, 오매불망(寤寐不忘)하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남과 북, 그리고 양키나라와 뛔국이 서명했다. 또한 러시아·영국·독일·일본·사우디아라비아가 그 협정에 보증을 섰다.

  임기는 끝나갔지만, 바야흐로 그 시점부터 반도(半島)에는 평화의 파도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무난히 ‘문주주의(文主主義) 시즌 2’를 만들 수 있었다. 누구와 무엇 덕분·덕택인 줄은 달리 떠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국민의 군대’로의 전시작전권 전환과 동시에 이 땅의 양키군대가 철수를 준비했다. 북녘에서는 핵탄두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북녘 ‘인민군대’의 복무 연한이 대폭 줄었다는 보도와 함께, 곳곳의 장마당이 더욱 번성한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격동의 세월은 이렇게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가운데에서도 이 나라 ‘국민의 군대’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양키군대가 완전히 물러가고 전시작전권을 틀어쥐질 않았던가.

  그 사이에 북녘 ‘인민의 군대’는 거의 해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전쟁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회주의 강국(强國)’은 그 언제 적의 월남(越南)이나 아프간과 다를 바 없게 변모하고 있었단다. 자본주의식 부패가 더욱 만연해졌다고 했다.

  이미 70여년간 경험에 의해 학습한 바 있는 북녘의 총비서를 비롯한 로동당 간부들과 인민들에게 ‘북침’(北侵)은 꿈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더군다나 ‘평화협정’ 체결 이후 불과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양키나라를 비롯한 서방세계의 자본도 물밀듯이 북녘에 들이닥쳤지 않았나. 그러자...

 

  그간 머저리 취급을 받으며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국민의 군대’가 기회를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문주주의(文主主義) 시즌 2’의 군 통수권자도 야심이 발동했다지 뭔가. ‘문주통일’(文主統一)의 가능성이 크게 열린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인 202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국민의 군대’는 F-35 전투기 등 막강 공군력을 동원한 전격적인 평양 공습을 필두로 ‘문주통일’(文主統一) 전쟁의 막을 올렸다. 하지만, “결사옹위(決死擁衛)”를 내걸었다던 북녘 ‘인민군대’는 아예 싸울 맘이 없었다. 더군다나 ‘인민’들도 ‘국민의 군대’에 적극 협조하며 반갑게 맞았다.

 

  5일 만에 평양을 점령한 ‘국민의 군대’는 파죽지세(破竹之勢)의 북진(北進)을 거듭하여 9월 15일 압록강과 두만강의 남쪽까지 도달했다. 이렇게 되자 양키나라는 물론 뛔국과 국제사회도 반도(半島)의 ‘문주통일’(文主統一)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북녘 총비서 일행은 캄보디아로 튀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오늘 2024년 9월 23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문주통일’ 완성을 축하하는 ‘범국민대회’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문주통일’의 기점이었던 ‘유엔 총회 연설’ 3주년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시청역 지하에서 광장까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광장에서는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서로 다툼을 한다. 곳곳에서 “문주주의(文主主義) 승리!”와“문주통일(文主統一) 만세!”가 드높다. 이리저리 인파(人波)에 밀리면서도 그 구호를 따라 하려고 목젖을 세웠다.

 

“문주통일 만...”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머리를 쎄게 밀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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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양반이 지하철인데도 잠꼬대를 심하게 하네. 얼마나 크게 소릴 질렀으면 마스크까지 내려왔어... 정신 차리세요!”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얼른 주으며, 얼떨결에 창문을 쳐다봤다. 전동차는 시청역을 막 출발해서 서울역으로 향하고 있다. 시청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해야겠다.

10분쯤 늦을 거라고...

 

李 · 斧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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