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랐던 조사(弔辭)와 추도사(追悼辭)

- 김부겸, 직접 연관성도 없는 5·18 조사에서 언급
- 노재봉, 적(敵) 개념 사라진 실존적 위험과 시민사회 위기 지적

 

대한민국 국가장(國家葬)을 거행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전·현직 국무총리가 각각 조사(弔辭)와 추도사(追悼辭)를 낭독했다.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자리여야 할 영결식장에서 숭모(崇慕)와 현양(顯揚)의 분위기는커녕,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어색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조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는

 

“오늘 우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님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재임시에 보여주신 많은 공적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인께서 유언을 통해 국민들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의 뜻을 밝힌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이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또한 역사 앞에서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시작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가족께서 5·18광주민주묘지를 여러 차례 참배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고인께서 병중에 드시기 전에 직접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 사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남습니다.” 라며 5·18과는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는 사실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서 읽어 내려갔다.

 

현장에서 조사를 들은 한 참석자는 "거의 사자(死者) 명예훼손에 가까운 내용을 듣느라 그 자리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에 반해, 노재봉 전 국무총리의 추도사는 고인이 남긴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숭모와 현양의 품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였다.

 

추도사를 읽는 순간순간마다 연신 눈시울을 붉힌 노 전 총리는

 

6·29 선언을 두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성공, 전두환 대통령의 흑자경제의 성과로 이어진 한국 사회구조의 변화를 확인하는 선언이었습니다. 개인과 국가 간의 직접적 지배와 복종 구조에서, 그간 영글어져 온 ‘시민사회’의 출현에 의한 체제 변화를 확인해준 최소의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적(敵)’ 개념조차 지워버린 실존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 종족적 민족주의에 사로 잡혀, 고통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중략) 각하께서 역사적 판단을 내리신 시민사회의 존재도 이제 흔들리고 있습니다.” 라며, 고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대한민국의 체제위기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영결식장에서 만난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권순철 사무총장은 “아무리 코로나 정국이어도 명색이 국가장인데 집권여당의 인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얼마나 우리사회가 몰상식의 상황에 빠져있는지를 가늠하는 서글픈 모습이었다.”고 탄식했다.

 

다음은 대한민국 제22대 노재봉 국무총리의 추도사 전문이다.

 

                                          = 추 도 사 =

                 

                                                                      2021. 10. 30.

                                                               전 국무총리 노 재 봉

 

 

노태우 대통령 각하.

 

어쩌시자고 저를 이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하십니까.

벅차오르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서울 올림픽을 허락하지 않으려거든, 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사무실을 내 무덤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시던 그 절규에 기어이 열리게 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평화의 광장”에서 각하를 마지막으로 모시게 되는 우리의 심정을 헤아리소서.

 

세계는 모두 놀람의 함성으로 가득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존재와 발전상이 비로소 확인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각하가 이룩하신 그 성과를 각하께서는 비로소 동서를 막론한 전 방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에 연결시켜, 이로써 그렇게 열망하던 UN에 가입되는 계기를 또한 만드셨습니다.

평화는 그렇게 추구되었습니다. 이따금,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로 시작되는 서울올림픽 노래를 부르시던 소리는 아직도 저의 기억에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 이전에 각하께서 그 유명한 “6.29 선언”을 공표하신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두고 대선 승리를 위한 일대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마는, 각하께서 생각하신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성공, 전두환 대통령의 흑자경제의 성과로 이어진 한국 사회구조의 변화를 확인하는 선언이었습니다. 개인과 국가 간의 직접적 지배와 복종 구조에서, 그간 영글어져 온 “시민사회”의 출현에 의한 체제 변화를 확인 해준 최소의 선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각하의 권력행사의 양식에도 당연히 큰 변화를 보여 주셨습니다. 각하께서 설득권력을 전개 하셨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입헌적 국가이성‘의 정치에 익숙했던 논자들은 이를 두고 ‘물태우’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각하께서는 시민사회의 출현과 그것에 따르는 시민의 능동적 공덕심에 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판단 하셨습니다.

이런 체제변화를 전제로 하여, 각하께서는 저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결의를 말씀하신 것을 잊지 못합니다. “이제 군 출신의 대통령은 나로서 마지막이야!” 하는 결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 배경을 모르고는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각하께서는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예지로 1951년에 4년제를 기반으로 한 정규 육군사관학교를 창설하셨고, 그 1기 졸업생이 바로 각하와 그 동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여 투철한 군인정신 과 국방의식을 익혔을 뿐 아니라,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보는 한국정치는 우선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가난과 소총 하나 만들 수 없던 상황에서 그들은 이것이 국가냐 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할진대, 이는 이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숙명에서 이제 벗어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 바로 “군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야”라고 말씀하셨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 이를 실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못다 한 꿈 하나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KTX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각하의 계획은, KTX를 서울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는 일본과 연결시키고 북으로는 북한을 관통하여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시키는 꿈이었습니다.

이것이 각하가 구상한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각하께서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해양에의 길을 튼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륙의 진출을 보완하여 자유민주주의의 평화를 구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각하의 ‘평화이념’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적(敵)’ 개념조차 지워버린 실존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 종족적 민족주의에 사로 잡혀, 고통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는 인간들이 만들면서 그 역사를 인간들이 잘 이해하기는 정녕 어려운가 봅니다. 통치의 도덕성은 절제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각하는 통치에서 절실히 깨닫습니다. 각하께서 역사적 판단을 내리신 시민사회의 존재도 이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각하,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휘어져 진행되지 않습니까.

각하,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노태우 대통령 각하!

 

우리들이 이어 만들 등다리를 저려 밟고, 이 가을 편안히 가시옵소서...

 

 

강 · 동 · 현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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