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 岩 趙 · 漢 · 奭 마음[心]이라는 본체와 정기(精氣)라는 본체와 육체(肉體)라는 본체는 각각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2장 도화장(道化章)에 이런 기록이 있다. “도(道)는 일(一: 水素는 우주 질량의 약 75%를 차지)을 낳고, 수소는 핵융합으로 에너지[火: 2]를 발생시킨다. 에너지는 물과 작용하여 나무[木: 3]를 낳고, 나무는 싹을 틔워 만물을 생장시킨다. 만물은 음(陰)이 양(陽)을 품어 안고, 서로 부딪쳐 기(氣)로 조화를 이루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고아가 되고 과부가 되고 곡식이 없음인데, 왕(王)과 공(公)은 이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내용과 실질(實質)에는 손해가 났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고 이익 때문에 잃는 것도 있다. 옛사람들이 가르친 것을 나 또한 그 이치를 가르치니 강포(強暴)한 사람은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한다. 나도 이것을 가르침과 훈계의 시초(始初)로 삼으려고 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설(陰陽說)이란 우주 만물의 성질과 변화 이치에 대한 인식체계이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각각 음양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존재하고 대립하면서 조화를 이룬다고 봤다. 사
松 岩 趙 · 漢 · 奭 초승달이 조금씩 커져 만월이 되고 나면, 조금씩 작아져 삭이 되었다가 다시 초승달로 순환된다. 선조들은 태양계 안에서는 태양의 화기(火氣)와 땅의 수기(水氣)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탄생법칙으로 인해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고, 허(虛)에서 실(實)이 만들어진다고 본 것이다. 선조들은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해와 달의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동양의 음양(陰陽)우주관은 해와 달을 관찰하고 통찰한 후 정립된 것이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29.5일 걸리는 이것을 한 달[陰曆]이라고 했고,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365.2일 걸리는 이것을 한 해[陽曆]라고 했다. 음력과 양력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3년에 한 번 ‘윤달’을 두었던 것이다. 달은 시기마다 다른 모양을 갖고 있다. 순서대로 삭,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이다. 우선 지구에서 달을 볼 수 없는 시기를 ‘삭’이라고 한다. 이때는 음력 1일로 지구를 공전하는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삭에서 2~3일이 지나면 눈썹 모양의 달이 뜨는데, 이를 초승달이라 한
松 岩 趙 · 漢 · 奭 마음이라는 본체가 먼저이고 기운이라는 본체가 두 번째이고 육체라는 본체가 세 번째로 작용한다. 앞에서 생명체의 생성과정과 그 생명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생명체의 작용 순서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서 옛 고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배달국 태우의(太虞儀) 환웅 때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는 아사달 제천행사를 보고 난 후 이런 글을 남겼다. “만물의 큰 시원[大一]이 되는 지극한 생명이여! 이를 양기(良氣)라 부르나니 무(無)와 유(有)가 혼연일체로 존재하고 텅 빔[虛]과 꽉 참[粗]이 오묘하다. 삼[三神]은 일[一神]을 본체[體]로 삼고 일[一神]은 삼[三神]을 작용[用]으로 삼으니 무(無)와 유(有), 텅 빔과 꽉 참이 오묘하게 하나로 순환하니, 일신과 삼신의 작용은 둘이 아니로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삼신(三神)은 천일(天一)과 지일(地一)과 태일(太一)이시다. 천일(天一)은 [만물을 낳는] 조화(造化)를 주관하시고, 지일(地一)은 [만물을 기르는] 교화(敎化)를 주관하시고, 태일(太一)은 [만물을 다스리는]
松 岩 趙 · 漢 · 奭 마음[心]과 기(氣)와 육체(肉體)가 따로 작용하지만 그 근본은 변함이 없다. 선조들은 생명체의 출생과정을 관찰하고 난 후 생명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관찰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옛 고서(古書)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군세기 서문(序文)에 “조화신(造化神)이 내 몸에 내려 나의 성품[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 몸에 내려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 몸에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한마음으로 안정되어 변치 않는 것을 진아(眞我)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인간과 만물이 다 함께 삼진(三眞: 性·命·精)을 받았으나, 지상에서의 삶에 미혹되어 삼망(三妄: 心·氣·身)이 뿌리를 내리고, 삼진과 삼망이 짝하여 삼도(三途: 感·息·觸)라는 세 가지 작용을 낳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이 주체가 ‘진아(眞我)’일까? 잠시 생각해보면 ‘진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듣고 보고 배우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고 체
松 岩 趙 漢 奭 보이지 않는 마음과 기(氣)가 육체(肉體)에 담아질 때 한 생명체로 태어난다. 자연에 적응하며 살던 선조들은 문득 많은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떻게 태어났지? 하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보이는 몸 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기운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동양철학에서는 “보이는 존재는 생겨나고 머물다가 사라진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은 기(氣)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생명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우주에 텅 빈 공간과 물질을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기(氣)는 이 두 공간에서 존재한다. 텅 빈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에너지 역할로, 물질을 적재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생명체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봤다. 이런 역할에 의해 어느 순간 생명체로 들어날 때 “하나의 존재로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인간366사(人間三六六事) 제2사 경신(敬神)에 “경(敬)이란 지극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신(神)은 천신(天神) 곧 ‘하나’님을 말한다. 해·달·별[日月星辰]과 바람·비·천둥·번개[風雨雷霆]는 형상이 있는 하늘이고, 형상이 없어 보이지 않고 소리가 없어 들리지 않는 것은 형상이 없는 하
松 岩 趙 漢 奭 스스로 존재(存在)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존재, 우리들은 이 현상을 자연(自然)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자연’하면 영어로 ‘Natural’이라고 하고 ‘인공(人工)’하면 ‘Artificial’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Artificial’이란 인공이 가미된 것을 말하고 그 상대개념으로서의 ‘Natural’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상태를 자연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자연은 ‘Artificial’의 상대개념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 담긴 자연을 말한다. 인공이 가미 되지 않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포함한 상태의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자연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것을 가리켜 “자연의 섭리(攝理)”라 한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자연의 이치(理致)”라고 하였다. 이 자연의 섭리에는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라는 잣대가 들어 있다. 자연은 수
松 岩 趙 · 漢 · 奭 사람들이 화(火)나면 “뚜껑이 열린다. 뒷골이 당긴다. 뒷목이 당긴다. 울화가 치민다.”는 말들을 한다. 이런 증상이 있기 전에 하는 행동이 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욱하는 마음’에 분노가 폭발하기도 하고, 심한 상실감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때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말하기보다는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며 표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욕을 하거나,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두둔하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렇다면 화(火)를 이끌어내는 원인은 무엇일까.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아 기운이 분출되는 화기(火氣)의 상태를 말한다. 용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과격한 언어로 상대를 억압하려는 행동일 뿐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약한 사람이다. 이때 장애물이 나타나면 분노심과 탐욕심이 생긴다. 분노와 탐욕은 이성을 상실하게 하고 어리석음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화(火)를 낸 후 그 사람의 상태는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복 받치는 울분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을 살피지 않고 남 탓하기 바쁘다. 그러고 나서 화낸 자신이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혼탁하고 부정적
松 岩 趙 · 漢 · 奭 태초의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소우주(小宇宙)라는 것을 깨닫고, 자연이 스스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듯이, 사람도 몸과 마음을 다스려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방법 중에 하나가 선도(仙道)이다. 선도(仙道)에서 도(道)란 자연의 다른 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도(道)의 가르침이란 삼륜구서(三倫九誓)를 말하는 것이다. 선(仙)이란 글자를 파자해 보면 ‘人+山’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육경신(六庚申) 수련이다. 삼륜구서(三倫九誓)에서 삼륜(三倫)은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그 “하나는 애정(愛情)요. 둘은 예절(禮節)이요. 셋은 도리(道理)”이다. 구서(九誓)는 사람이 할 도리를 설명한 것으로 그 “첫째는 가정에서 효도(孝道)에 힘써라. 둘째는 형제간 우애(友愛)에 힘써라. 셋째는 스승과 벗에게 신의(信義)를 다하라. 넷째는 나라에 충성(忠誠)을 다하라. 다섯째는 아랫사람에게 겸손(謙遜)을 다하라. 여섯째는 너희는 정사(政事)를 밝
松 岩 趙 漢 奭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젊은이가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간다. 우연히 어느 도인을 만나 수련을 하게 된다. 젊은이는 한(恨)을 땀(汗)으로 풀어내며[恨汗和心], 큰 바위 위에서 바위 밑 동굴에서 수련을 한다. 힘든 과정을 거쳐 몸 안에 있는 십이경락(十二經脈)과 기경팔맥(奇經八脈)을 원활히 운기(運氣)시키는 경지에 이른다. 경지에 오른 젊은이는 몸에서 발생되는 파장을 우주 공간으로 발산하여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여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宇我一體]에 들면서 자연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젊은이는 스승에게 수련결과를 검증을 받고 하산한다. 마을로 내려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런 줄거리를 무협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을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 큰 바위를 찾아다녔을까? 왜 큰 바위 주변을 맴돌았을까? 과학자들은 바위에 광석(鑛石) 등이 함유되어 있어 미세한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젊은이는 이 에너지의 힘을 활용하여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철학자들은 “우주만물은 기(氣)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한시적인 현상이다. 기(氣)는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뭉쳤다 흩어지면서 물질이 되고 생명이 되고 형상이 되고 사물이 된다. 기(氣)는
松 岩 趙 · 漢 · 奭 기(氣)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 ‘기가 차다, 기가 살다, 기가 죽다, 상기(上氣)되다, 기운(氣運)이 없다, 기력(氣力)이 넘친다, 기진맥진(氣盡脈盡)하다, 기절(氣絶)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기’를 활동의 근원이 되는 힘(power), 에너지(energy)라고 한다. ‘기’는 온 우주를 순환하며 작용을 한다. 인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는 것에는 몸, 즉 피부와 살과 내장, 뼈와 세포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는 ‘기와 마음’이 있다. 이 ‘기와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형체와 크기와 냄새와 색깔도 없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지만 ‘기’의 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우주 만물은 ‘기’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기’를 통해 너와 내가 하나인 것을 알게 되고 나와 우주가 하나[宇我一體]인 것을 알게 된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고려 때 서적 대변경(大辯經 : 조선 세조 3년 수서령 목록에 있음)에 “마음과 기운과 몸[心·氣·身]은 반드시 서로 의지해 있으나 영원토록 서로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