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광복절이며, 올해는 78주년이었다. 우리 민족이 감당한 불명예에서 벗어난 뜻깊은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취임 후 두 번째 맞이한 역사적인 날로서 경제인의 사면부터 먼저 단행하여 경제 불황에서 희망을 불어넣어 보자는 결단이 돋보였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과욕이 부른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의미여서 당사자들은 감사할 따름이겠다. 하지만 불명예를 가진 모든 국민은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한 번쯤 짚고 가자! 대통령께서도 발상(發想)의 전환으로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제언 해 본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형 실효에 대한 사면과 복권 그리고 특별 사면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올바른 가치관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다면 윤석열 대통령만이 배짱 있게 결단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또 있다. 먼저 인간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인간성 회복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다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생한 형사적 처벌에 대해 재론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거두절미하고 국가에 대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통 큰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 기회는 현 법률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범죄 경력 기록
영국이 품었던 천년에 걸친 자유주의 역사는 과연 신의 은총이었을까? 바다라는 거대한 방어벽을 친 영국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내정간섭과 대륙의 포식자들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대륙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의 학문과 기술,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주었던 영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급속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고, 급기야 산업혁명을 통해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했지만, 영국의 청교도 정신과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 법과 제도를 그대로 답습했던 미국은, 20세기 초 자유, 민주, 공화의 세요소가 결합된 복합 정치구조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구촌의 이념과 문명을 선도하는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저서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성찰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과 사회만이 가질 수 있는 신의 은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태초에 신이 첫 번째 인류(The First Man)를 창조했고,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류
태풍으로 무더위가 한풀 꺾인 듯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행여 이 글이 ‘읽는 분’들께 다시 무더위를 안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너무 크게 열 받지 마시길 바라며... + + + + +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 “아무 잘못이 없지만 (검찰이) 또 오라니 가겠다” “쌍방울과 이재명은 대체 무슨 관계인가. 나도 모르겠다. 인연이라면 내의를 사 입은 것 뿐...” 두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갖가지 큰일을 벌렸다고 알려졌다. 큰일이란 큰집에 가야 할 일이라고 한다. 바로 그 ‘집권 야당’(執權 野黨) 대표이자 ‘개딸 아범’님의 어록(語錄) 중 일부란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는 말 따먹기와 말 돌리기가 어디 이뿐이랴. 급기야... “뭐라고 얘기해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긴 전쟁보다 낫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 말마따나 역대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게다. 이렇듯 그간에 쌓은 많은 언(言)과 행(行)의 업보(業報)들로 말미암아 이 나라 법정(法廷)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더불어서, 한껏 차려입었던 방탄복도 너덜너덜해졌다는 요즈음인데...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대장동 실무자인 고(故)김문기
삼국사기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있어서 두 번 째 가라고 하면 서러워 할 정도로 김유신은 아주 돋보이는 영웅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열전 10권 중 3권을 인간적인 실수도 많았던 김유신의 이야기를 여러 역경을 모두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에 비해 양적으로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김유신도 젊은 시절 어머니 만명부인의 속을 태우며 천관녀에 빠져 방탕한 삶을 보냈었다. 김유신은 "네가 커서 나라에 공을 세워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줄 날을 밤낮으로 고대해왔는데 어찌 너는 술과 여자만 쫓아다니느냐?"라는, 어머니의 엄한 질책의 가르침에 반성하며 올바른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그런 후에 어느 하루는 김유신이 다른 화랑들과의 자리에서 만취해서 말 위에 올랐는데, 말이 스스로 길을 잡아 자주 가던 천관녀의 집을 향했다. 말이 천관녀의 집에 이르렀을 때에 천관녀를 보고 놀라서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말이 혼자 길을 잡아 온 것이다.”며 애꿎은 말의 목을 검으로 단번에 내리쳐 잘라버렸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의 읍참마속(泣斬馬謖)에 비견되는 명장 김유신의 참마대성(斬馬大成)인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누군가 대의를 지녔으나, 작은 사적 인연에
<전쟁론>으로 유명한 독일 군사전략사상가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는 나폴레옹전쟁 당시 12세 나이로 전쟁에 참여한 이후 나폴레옹군의 폐망까지 전장을 누볐다. 이후 프러시아 육군사관학교장을 맡으며 저술 활동과 교육을 통해 수많은 명장들을 육성해, 독일육군을 최강의 군대 반열에 올려놓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사회적 변혁과 전쟁의 시대적 전환과정을 목격했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 대한 정치사상적 인식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베를린대학에서 2년 동안 정치철학 연구에도 몰두했다. 고전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 마키아벨리의 분별력(Prudence) 개념을 도입했다. 즉, 당면한 시대정신을 읽고, 운명의 여신을 제압하는,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을 <전쟁론>에 포함시켰다. 클라우제비츠는 인간 감정에 따른 관념론적 절대전쟁 또는 무한전쟁과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상호작용이 작동하는 현실적인 제한전의 차이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철학에서 찾았다. 그리고 위대한 서사시 또는 영웅의 이야기로 시작해, 인간의 욕망과 자만에 기인한 고통과 피의 결과로 종결되는 전쟁인
지난 5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 우리의 헌법은 잠시동안 실종되었다 한다. 한 마디로 정치적 진영논리에 휘둘리어 정의·평등·공정의 추(錘)가 좌충우돌한 기억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민생의 걸림돌이 되어 부득이 해결해야 하는 민사재판은 기약도 없이 멈춰서야 했고,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민생활의 스케줄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확신조차 없다. 최소한 2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민사재판에 매달려본 사람이라면 김명수란 대법원장의 운영 미숙이 얼마나 잔인한 법의 유린이었는지 알 것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길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엄숙한 헌법이 자격 미달인 한 사람의 손에서 5년이란 세월을 법의 존재감이 없었으니, 국법(國法)은 만신창이가 되어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미개발 국가의 국민들이 겪고 있는 법의 상실에서 얻은 마(魔)의 주머니 같았다. 보수를 지지하는 정권 아래 헌법의 존재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좌파진영과의 일전(一戰) 상태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만을 기다려왔다. 지금의 보수파에게 돌아온 업보야말로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서식하는 좌파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 탓이 가장 크며 실수였음을 자인
“하느님, 보일러 좀 꺼 주세요!”... 하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넘쳐나고 있단다. 불볕더위가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예보가 들린다. 이런 가운데... ‘50억 클럽’, ‘돈 봉투’, ‘교권 흔들’, ‘순살 아파트’, ‘개(犬)네 가죽신(革신) 장사치’ 등등이 우리네 마음을 더욱 후덥지근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나...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의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4일에는 대전의 한 고교 내에서 교사가 피습당하고,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는 흉기를 들고 다니던 남성이 체포되는 등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묻지 마 칼부림’, ‘흉기 난동’이 빈발한다. 엄습하는 불안감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말마따나 “사실상 테러 행위”라는 표현이 적확했다. 범행을 저지른 작자들은 넓은 범위에서 ‘미친X’이 맞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검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난 뒤 (8월)3~4일 인터넷에는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가짜 뉴스가 유포됐다... 무차별 흉기 난동을 예고한 ‘살인 예고 글’도 20건 넘게 올라왔다... 경찰은 살인 예고 장소로 명시된 곳에 인원을 투입했고, 일부에선 밤샘 수색 작업이 벌어졌다...
프랑스혁명은 시민혁명이었다. 혁명을 이끌었던 자코뱅당은 시민이 되는 조건을 조세 의무에 두었다. 혁명의 실질적 목적은 거창한 자유, 평등, 박애 정신보다는 상위계급이었던 성직자와 귀족들로부터 상공인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프랑스혁명 당시 사회적 신분계급은 성직자, 귀족, 평민 등 세분류로 통상 구분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국민(Nation),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유산자로 불렸던 시민과 정치적으로 인민 (People), 경제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무산자로 불린 천민 등, 4계급으로 존재했다. 근대국가발전과정에서 사회통합과 참여권이 확대되면서 천민계급이었던 인민(People)도 국민개념(Nation)에 함께 포함되어졌다. 결국 인민이 국민이 되면서 문제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루소 (J.J. Rousseau)의 일반의지 (General Will)라는 철학적 화두와 함께, 단시간에 유명해진 국민개념(Nation)도 사실 프랑스 시골 지방에서 동창회나 사교모임같은 친목단체의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혁명이후 갑자기 국민 또는 국가라는 개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일본의 명치철학자 후쿠자와가 Nation의 한자어 번역을 가장 어렵게 여겼듯이, 아직도 Na
1969년 국토통일원에서 출발하여 1998년 DJ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금의 통일부로 운영되고 있다. 기능을 보면 19부 19청으로 조직이 구성되어있으나, 사실은 정부 기구로서의 규모나 역할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속한 부속기관 또한 통일연구원과 통일교육원 등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애시당초 통일부의 설립 목적은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 그리고 통일교육에 있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에 와서 교류는 단절되었고,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판문점 협약마저도 지켜지지 않음에도 북한측은 우리가 바라는 기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건설하고 설비한 수천억원의 재산마저 몰수하고, 파괴하는 저들의 행동이야 말로 우리가 바라는 평화적 협력과 통일보다도 오히려 북한 김씨 가문의 몰락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을 대비하는 통일 관련 기관이 더욱 필요할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100억이란 거액의 예산을 민간단체들에게 막무가내로 집행하고도 소대가리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갑니까라는 쌍소리를 들었지 않은가? 단도직입적으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였기에 국민은 가슴 쓰린 기억만 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에게 눈치 봐가며 퍼주기만 하는 필요 이
이 땅 ‘만악(萬惡)의 근원(根源)’인 그 전범(戰犯)의 불장난이 시작되고 1129일 째 되는 날... 오전 10시를 기해 모든 전선(戰線)에서 포성이 멎었다. 그러나... “통일목표는 기어코 성취되고야 말 것” ‘북진통일’(北進統一)을 주장하며 정전협정(停戰協定) 조인(調印)을 강하게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했다. 70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70년 세월의 운명을 갈랐다... 정전협정 이후 남북한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자유 진영의 도움으로 공산화의 위기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은 폐허를 딛고 번영을 이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나라가 됐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반면 북한은 고립을 택했고, 공산권 몰락 이후에는 고립이 더욱 심화했다. ‘3대 세습’이라는 반문명적 권력 체계가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주민들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상투적(?)이라고 느껴지는 이런 유(類)의 글과 말들을 접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史實+事實)임에도 이제는 크게 감흥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너무
5천만 국민 중에 별난 사람인 위선자 한 사람이 자기 가족을 다 동원하여 범죄를 기획하였다. 그리고 조작하여 기상천외한 대학입학 비리란 기록을 세우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복통이 터지라고 소리쳐봤다. 세상을 다 뒤집어 놓고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렬지지자 몇 명을 지지대로 삼아 보려 했으나, 범법 사실이 사필귀정으로 드러나니 뒤늦게 이자가 말하는 소리 들어보소! 나, 祖國이 아니라 曺國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국민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또 한번 법정을 쑤셔놓겠다고 한다. 대학교수직은 더하고 싶다고 ㅎㅎ.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법학교수이며 법무부 장관이었던 자가 법치를 무시하는데도 우리는 그저 이해하고 용서하란 말인가? 한동안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조국 당신의 술수에 마취되어 오로지 진영 논리에만 빠져 몸과 마음까지 고통을 받았음도 알진데, 가짜 선비행세를 계속하면서 놀아보겠다는 작정이란 말인가.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인들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 누구나 조국 당신과 똑같을 것인데... 그래도 한 가닥만이라도 정의가 무언지 알고, 이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현대철학의 문을 열어젖힌 천재 철학자 니체 (Fridrich Nietzsche)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은, 시인, 음악가, 심리학자, 계보학자, 문화비평가, 미학자 등 참으로 다양하다. 니체는 1867년과 1870년 각각 두 번에 걸쳐 지역전쟁과 보불전쟁에 참전했다. 첫 번째 참전당시 입었던 부상은 평생 니체를 괴롭혔던 육체적 고통으로 남았다. 포탄속에서도 철학적 상상력을 더해갔던 니체의 사상은 그래서 그런지 생사를 넘나드는 진솔함과 박진감이 넘쳐난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배출했다고 일컬어지는 4대 성인인, 예수,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는 위선자다. 그 누구도 직접 자신의 사상적 의지를 문자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문자의 장벽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제자들이 성인들의 언사를 기록해 후세를 위한 경전을 만들도록 했다. 주어진 관습과 제도에 안일하게 타협하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극복하는 동시에 재창조하는 자유정신의 의지를 강조했던 니체는, 초월적 존재를 향한 인간들의 동물적인 허영심, 습관, 나약함, 공포심 등이 신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물질적 삶에 반해버린 나태한 인간들에게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있는 희망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