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bn에서 시작된 인기 프로인 '한일 트로트 가왕 선발전' 경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일 양국을 뜨겁게 달굴 초대형 트로트 프로젝트로, '현역가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방송은, 2024년 치러질 '트로트 한일전'에 출전할 국가대표 현역 여가수 톱7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라고 한다. 이번 '현역가왕'을 통해 탄생한 톱7은, 일본판 '불타는 트롯맨'인 '트롯걸 인 재팬' 톱7과 맞붙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 예능인 신동엽이 MC를 맡아, 그동안 TV조선에서 독점하다시피 한 트로트 열풍을 '한일전'이란 이름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참가자(가수)끼리의 점수를 택하는 방식이 필자의 눈으로는, 마치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실의 정치판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흥미와 함께 우려의 마음도 없지 않다. 경연에 참가한 가수가 동료 가수의 노래에 점수를 정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을 기대해야 하는데도 정말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프로를 만든 제작자의 의중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국가 대 국가간의 실력 대결이라면 냉정하고 공정한 잣대로 상대 가수의 노래에 대해 평가를 하고, 가장 우수한 가수를 '한일전'의 대표로 참가시켜야 제대로된 경쟁이
복수난수(覆水難收)라는 말은, 강태공과 마씨 부인 사이에 있었던 것을 동진의 왕가가 습유기(拾遺記)에 기록한 것이다. 강태공의 부인인 마씨는, 제나라 제후로 봉해지기 전에 공부만하고 생계를 돌보지 않는다고 태공을 떠났다가 제후로 봉해진 후에 재결합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태공이 마씨 부인에게 "항아리의 물을 엎질러버리고 다시 담아보라 하면서, 그대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재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기 어렵다." 하였다. 이것이 복수난수이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판단이 간혹 가정을 파탄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또 회사에서는 마찬가지의 판단이 간혹 회사를 혼란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또한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판단이 간혹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가장이 배우자와 협의를 하고, 회사에서는 사장이 이사들과 협의를 하고,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국무위원과 협의를 한다. 가정보다 회사, 회사보다 국가에서는 어떤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데이터에 기초한 수리적 해석을 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치우침이 없이 이성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장수가 분노로 군사를 일으키고 흥분해서 병사를 진격시
2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 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부산은 29표를 얻는데 그쳐 119표를 획득한 1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뒤졌다. 이탈리아 로마는 17표를 받았다... 초조하게 밤잠을 설친 많은 국민이 아쉬워했고, 진행형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허탈감도 비례할 듯하다. 정부 관계부처(관계자)와 민간 유치위원회가 ‘부산 유치’(釜山 誘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들 한다. 국민들의 성원·응원도 엄청났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언제 어디서든 냉정하다. “졌잘싸”는 패자의 위안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 군데에서 들려오는 ‘실패’의 원인... 정보의 부재를 비롯해서 2차 투표에 초점을 맞춘 득표 전략의 실수 등등이 회자(膾炙)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보고와 전망이 언론에 계속 거론되면서 국민들 마음의 상처가 더욱 커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면에... 표결 결과대로, 사전에 판세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한들 어쨌을 텐가. 뒤집을 만한 힘이나 수단이 있었을 거라고? 그냥 도중에 포기했어야 한다고? 결과가 나온 마당에 ‘아무 말 잔치’나 벌여서야... “‘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눈과 귀가 사통팔방으로 터 있어야 국민의 희노애락을 느낄 것이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사통팔방으로 눈과 귀가 터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국민의 소리가 심각하게 들리곤 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난 정부에서는 눈과 귀의 역할을 해준 국정원, 기무사, 경찰, 검찰에서 수집된 종합정보를 가지고 국정운영에 반영하였음을 알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 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되면 세계의 흐름에서 국내 흐름을 손바닥처럼 내다봐야 판단이 정확히 설 것이고 국정운영에 리스크가 적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 와서는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닫혀있는 것인지 국민은 걱정스럽게 지켜보면서, 혹시나 다수의 의석수를 가진 야당의 힘으로 눈과 귀는 막혀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에 다수당인 야당의 폭주로 인한 문제라면 정치적 진영논리가 아닌 이념 정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극 대 극으로 가고 있는 북한 김정은과의 오기 싸움에서 절대로 질 수 없는 자유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면, 검찰의 정보만으로 세상만사를 대처할 수 없는
정치는 인간의 사회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훌륭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이라면 그 대표가 정치인 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정치인 집단은 사회의 시비(是非)를 따질 철학적 원칙은 없으면서, 오히려 근거가 없는 망언 등으로 불신만을 자초하고 있다. 또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을 위해 직무 및 직책을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서약하였지만, 국민을 위해 헌신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의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을 마주하면서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소금 그릇을 엎지르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국정 철학의 원칙을 상실한 채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사적 이익을 교묘하게 편취하면서도 인간의 주거 욕망을 노동 없는 부의 사회악이라며 부동산을 경원시(敬遠視) 했으며, 건전한 노동을 거부하는 노조를 두둔함으로써 노동이 없는 부의 사회악을 조장하는 이율배반을 하였다. 또 본인들 스스로 후안무치가 됨으로써, 가치관을 상실한 부도덕한 행위로 양심이 없는 쾌락의 추구가 사회에 횡행하는
혁신위, 비대위, 공약(公約/空約), 여론 조작, 선거 부정, 200석, 험지 출마, 전략 공천, 후보 경선, 연동형/병립형 비례 대표, 신당(쉰당), 제3지대, 몸값, 윤핵관, 조·추·송... 등등등 찬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거리를 마구 뒹굴 듯... 여러 언어의 파편들이 저잣거리에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된 지 오래다. 여기에다가... “정치를 후지게...”, “안O수씨 조용하세요”, “어린놈 / 건방진 놈”, “한O훈 같은 XX” 등등의 대사(臺詞)와 그 주인공들도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바야흐로 ‘선거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시절이 왔다. 이와 맞물리면서... 여의섬 ‘민이(民異)의 전당(殿堂)’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나라 정치판의 전통적인 추악한 짓거리가 차츰 눈에 띄게 진화(進化)하고 있다는데... 수년 전 아무개 논객이 그 ‘전통적인 짓거리’를 ‘오(더러울 汚/다섯 五)질’이라고 지적·설파했었다. ① 자유민주체제를 갈아엎거나, 이 나라를 북녘 돼지새끼에게 갖다 바치려는 ‘반역·이적질’ ② 나라 곳간과 국민의 시간을 털어먹는 ‘도적질’ ③ 야바위로 판을 흐리는 ‘미꾸라질’ ④ “내가 누군지 알아?”식의 ‘갑질’ ⑤ 위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의 어느 봄날에, 배편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던 많은 학생을 태운 세월호가 서해에서 침몰하였다. 해난사고에서 세월호와 같이 많은 희생자를 내고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일은 거의 없었으며,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 후에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이전까지는 건전한 상식이 더 통용되었으나 그날 이후부터는 불온한 궤변이 더 통용되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환심의 교묘한 언사(言辭)와 아첨의 안색을 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일순모면(一瞬謀免)을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사람의 인품에 고개를 숙이고, 사람의 지위에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비운 밥그릇 수에 따른 사람의 나이에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하지만 근간에 정치권에서는 시정잡배들의 아수라장에서나 있을 법한 악의적 비방의 “어린 놈”으로 유발되고, 이어지는 “후진 놈”, “너, 구토” 등의 말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귀태”, “대통령 풍자 누드화” 등 여러 가지 추잡한 말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망언을 강직한 절조라고 하고, 탐욕을 성실한 능력으로까지 둔갑시키지는 않았던 것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산에는 대부분 깔딱고개라는 것이 있다. 주로 산 정상의 7부 능선이나 8부 능선쯤에 자리한다. 웬만한 장정도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들게 올라야 할 만큼 산세가 험하고 가파르다. 삶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을 함부로 다룬 장정들은 결국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곳이 깔딱고개다. 옛날에 길을 나서는 나그네는 올라야 할 깔딱고개를 생각해서 여러 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산의 입구에 들어서면서는 성황당에 두 손을 모아 기원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든 삶의 고개들을 가끔 마주치게 된다. 대학입학, 취직, 승진 등에 따르는 여러 분야의 깔딱고개를 오르곤 하였다. 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사람은 숨을 깔딱거리면서도 마주한 고개를 오르고 산을 넘는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그곳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아무리 건장한 장정도 방탕한 생활로 몸과 마음을 망치고서는 결코 깔딱고개를 오를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내년 봄에는 국민의 선량을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자신이 지역을 발전시키고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유일의 후보로, 또는 미륵불과 같은 구원자라고 떠벌리겠지만, 몸과 마음의 준비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 에콰도르 서안해변의 서쪽으로 926km 지점에 있으며, 크고 작은 19개의 섬과 다수의 암초로 이루진 제도로 정식 명칭은 콜론 제도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땅거북의 등판이 말의 “안장”과 닮아서 스페인어로 말의 “안장”을 의미하는 “갈라파고스”로 불리게 된 것이다. 찰스 다윈은 1835년에 9월에 로버트 피츠로이의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종의 기원”을 집필했다. 다윈은 무엇보다도 이 갈라파고스에서 외부와 교류하지 못한 고립된 종을 보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교류하고 혁신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기회비용 및 고정비용을 우려하여 내수시장만을 위한 휴대폰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한 결과, 일본은 전자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미국 및 한국에 처절하게 패배하였다. 세계시장과의 교류와 유통은 외면한 채, 자국중심의 제품생산에 집중한 결과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는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빠졌던 것이다. 일본은 내수시장과 기술력의 우위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국제표준의 기본룰을 역행하면서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잊혀진 존재가 되어
빈대는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사라졌지만... 전국 각지에서 빈대가 출몰하면서 '빈대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8일 정부 합동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등에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 건수는 30여건이다... 어수선한 세월에 빈대까지 가세했다. 이 나라 청춘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빈대’ 하면 떠오르는 속담이 있질 않던가. 우리네 조상님들의 예리한 관찰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빈대도 낯짝[또는 콧등]이 있다.” 지나치게 염치(廉恥 부끄러움 아는 마음)가 없는 족속을 나무라는 말씀이란다. 1970년대에 빈대가 사라졌다고? 낯짝 없는 빈대는 쭈우욱 있어 오질 않았던가. “현행 법체계 내에서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소명과 해명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은 비법률적 방식으로, 예를 들어서 문화적·사회적, 또는 정치적 방식으로 자신을 소명하고 해명해야 할 본능이 있을 것 같고 그런 것이 또 시민의 권리...”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현재 항소심 진행 중) 전(前) ‘법무부 장관’의 주장이다. 내년 총선(總選)에 출마하여 당선만 되면 ‘만사 무죄
공자의 논어 ‘태백’ 편에 “狂而不直(광이부직), 侗而不愿(통이불원), 悾悾而不信(공공이불신), 吾不知之矣(오부지지의)”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의미는 “뜻은 크면서 곧지 않고, 어리석으면서 애쓰지 않고, 무능하면서 신의도 없다면, 그런 사람은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뜻으로, 그런 자에게는 공자도 가르침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시절, 감염병 전문가, 경제 전문가의 진언을 무시한 자의 무지에 의한 정파적 판단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술자리 모임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간혹 그들과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하게 되면 안주거리로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전문가의 진언을 무시한 자에 대해 공자와 같이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한다는 말이었다. 文정권에 기대를 저버린 이유는 손가락으로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논어의 ‘태백’ 편과 너무나 잘 대비되는 것이 있어 몇 가지 적어본다. 그것의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는 말로 큰 뜻을 가진 척하면서, 뒤로는 재정소요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타국에 이주하여 거주하도록 하는 등의 위선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에 두 번의 난을 겪은 임금은 14대의 선조와 16대의 인조이다. 선조는 바다 건너 왜국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으로 일관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나라를 황폐하게 하였다. 인조는 압록강 건너 청의 요구를 무시한 채, 광해군의 명국과 청국의 관계를 동시에 맺은 중립정책을 폐기하였다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나라를 피폐하게 하였다. 선조는 많은 조선 도공을 왜국으로 인질로 보내었고, 인조 또한 조선 양민을 청국으로 인질로 보내었다. 이러한 선조와 인조가 두 번의 전란을 겪고서도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무능한 잘못을 뉘우치고 청렴한 생활과 국민의 삶을 생각하는 정책을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속담으로 치자면 선조와 인조는 비록 소는 잃었지만, 다시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 외양간은 잘 고친 덕분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방역정책, 청년정책, 소외계층 복지정책 등이라며 국가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방만하게 운영하였다. 또 정권 최고위층의 오만한 독선적 주창이 높을수록, 일반 국민의 건전한 집단적 원성 또한 높아 갔는데도 이를 무시하였다. 선조와 인조가 두 번의 전란에도 불구하고 무능을 뉘우치고 청렴으로 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