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정부 여당이 혼란에 빠졌다. 꼴랑 보궐선거 한번 졌다고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이 선거 끝난 지 3일 만에 전격 사퇴해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39%의 표를 던진 지지자에겐 실망이고, 25만의 기권표를 던진 강서구 유권자에겐 희망을 포기해버린 자해행위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내내 잡범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은 전통 야당의 틀을 깬 희망이 없는 정당이라고 말해왔다.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호소가 메아리였고, 대통령의 지지도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었다면 자당(自黨)의 문제가 더 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태민안을 갈망하는 국민의 바람은 무엇이겠는가? 불안감을 표현하는 정당의 내분이라면 차라리 창당(創黨) 수준으로 개편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도 동정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태에 젖어 전형적인 무기력의 모습을 보인 정치인과 3선을 넘긴 의원에게도 과감히 용퇴시키는 개벽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달라는 나라 지킴이의 외침이다. 지금 나라 밖은 온통 시끄럽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지역이 흥분해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국민단결로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고 안정을 고
제27회 노인의 날을 맞이하였던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주린 배를 참아가며 선진 산업화에 헌신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산다. 보릿고개 시절 물 한 바가지 마셔가며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라고 목소리 높여가며 산업현장으로 달려갔던 지난 추억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올려놓는데 기여하였다. 그랬기에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지금의 노인들에겐 뒷방 늙은이로만 취급받고 미래가 밝지 않다는 통계를 보면, 젊은이는 상좌 취급받고 한국사회의 노인들은 우렁이(새끼를 낳고 새끼에게 뜯겨 먹히는)에 비유하는 것이 되어버리고만 슬픈 현실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전체인구 5100만 명 중 1000만에 가까운 노인인구가 미래가 아득하여 생활이 불안정한 환경에 놓여있기에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1위라니, 현대의학의 발달과 정부의 의료복지 혜택으로 얻어지는 장수(長壽)의 의미가 무슨 소용 있느냐 묻고 싶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자식에게 일생을 아낌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며 과잉보호에서 얻은 자업자득 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부모 자식 간의 효(孝)와 의(義)가 상실된 사회가 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하는 영화가 1989년에 개봉되었으니 벌써 30년 남짓 되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성공은 때와 장소에 따른 사리를 분별하는 데서 시작되고 또 노력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고, 아직도 교실 안의 지식만을 신봉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주로 그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남들보다 나은 환경속에서 자라 학연 등으로 축적된 인맥들도 탄탄하다. 하지만 인격은 그와 별개인 경우가 많다. 소위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대학을 나온 자들 중에서 최고난이도의 국가시험은 일찍 합격하고 출세도 하였지만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은 그리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임명직으로는 거의 최고의 지위에 올랐으나 선출직으로 가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최고 수준의 대학을 통해 쌓인 학문적 지식수준은 상당하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인격을 갖추지 못해서 때와 장소에 따른 사리의 분별에는 다소 우둔하다. 간혹은 때와 장소를 분별하지 못한 채 실언하는 경우가 있다. 그의 말 자체는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으나 때와 장소에 따른 사리의 분별에는 많은 경솔함이 있다고 지적하지 않
아시안게임(9.23.~10. 8)이 한창인 이즈음... 아무개 일간신문 기사의 일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공화국의 핵 무력 건설 정책이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써도 다칠 수 없게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10월 4일 ㄱ신문)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군사협력 강화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젠 헌법을 명분으로 핵무력 강화에 정당성까지 부여하면서... (10월 4일 ㄷ일보)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 [# 기사들에 나오는 ‘날짜’들을 주목한다.] 북한이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한국의 국가명을 ‘괴뢰’로 표기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9월) 30일 치러진 아시안게임 한국-북한 여자축구 8강전 경기 결과를 지난 2일 방영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4월 한·미 ‘워싱턴선언’ 이후 한국을 ‘괴뢰 지역’, 윤 대통령을 ‘괴뢰 역도’라 부르며 폄하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누군가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재탕이라 크게 흥미를 끌지는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 버젓이 TV 화면에 이 나라를
추석은 우리고유의 명절이다.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라 말하지만 보수단체 활동가들에게는 배고픔의 명절이다. 소위 진보 정권시절에 그나마 당근질이라도 해주었건만, 바라고 바라던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당근이 아니라 뿌리조차 없다. 진보라고 불리던 시민단체에서는, 5년 내내 풍성한 추석 명절 같은 시절로 곳간에 양식은 가득 채워져 있어서 5년의 흉년에도 견딜 수 있으나, 보수라는 시민단체의 현실은 곳간이 텅 빈 상태다. 추운 5년을 견디어 오면서, 좋은 날이 오리라 굳게 믿고 동냥처럼 던져준 당근 몇 조각으로 자존심 버려가며 근근이 버티어 왔었건만 곳간은 여전히 비어있다. 그럼에도 좌경화 되는 나라를 방지하기 위한 생각에서 눈물겨운 보수 지키기 다짐을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관변단체는 뭔가? 그들이 보수 시민단체만큼 몸으로 행동으로 진보 좌파와의 결전을 하고 있는가? 관계자께서는 배고픈 보수 지킴이들이 아사되지 않도록 연구해주었으면 한다.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은 고향 친구란 명분으로 억대의 기부금을 주는 세상인데,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사수하기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는 보수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흔한 쌀이라도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
“이 대표는 단식투쟁 24일 차인 오늘(9월 23일)부로 단식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회복 치료에 들어간다... 이 대표를 진료하고 있는 의료진은 오늘 이 대표에게 즉각적인 단식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더 이상의 단식은 환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진의 소견...” ‘투쟁’이라고? 그 낱말이 욕하겠다. 그저 ‘투정’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단식(斷食) ‘호소’부터 단식 중단(中斷) ‘주장’까지 여러 일이 벌어졌다. ‘호소’는 “한다니까 하나 보다”, ‘주장’은 “진짜 하긴 했었냐”는 저잣거리의 물음에 대한 댓거리라고나 할까. 더 깊은 의미는 ‘읽는 분’들이 헤아리길 바란다. 일부 언론 매체에 아래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던 걸 참고삼아 적는다. ▶ 일부 의사들 “李 하얀 링거액, 고영양 수액 요법” ▶ “고영양 수액 요법(TPN) 의혹 보도 40분 만에”… ‘이재명 단식 중단’ 시점 논란 많은 국민들은 그간 ‘경험에 의한 학습’의 힘으로 ‘단식 호소인’과 그 언저리 작자들의 말 따먹기와 행동거지에 대해 놀랄 만큼의 직관력을 보였다. 앞날의 짓거리도 정확히 예측해 왔다. 이를테면 ‘용한 점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30여년 전(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가짜뉴스 척결에 온 힘을 쏟는 이유에 대해 국민은 상세하게 잘 모르고 있다. 가짜뉴스로 인한 시위로 지난 천성산 145억 원, 광우병 소고기 파동 3조 7천억 원, 제주 해군 기지 사태 275억 원, 사드 반대로 900억 원의 손실을 가져왔다는 국민 감사에서 나온 추정이다. 이러한 손실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민주노총과 좌파 시위꾼들과 사회주의 선호도에 빠진 자들의 소행에서 생긴 국가 손실이며 국민 호주머니 손실이다. 한마디로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매국 행위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위국(危局) 행위는 북한 김정은의 전략적 기획에 동조하는 짓이다. 이래도 야당 지지라는 단순한 진영 논리에 휩쓸려 반대 시위에 열을 올리겠는가? 특히 개딸이라고 하는 반이성적 사고를 가진 자들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있는 국민이라면 자신이 왜? 어렵게 살고있는 가를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법하다. 꿈의 복지 과잉으로 마냥 즐거워하던 OECD 3위였던 그리스가 망한 진짜 이유가 말해주고 있듯이, 인기를 위한 퍼주기 복지정책으로 멍든 우리의 현실에 가짜 뉴스로 수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발생케 하는 그 제공자와 매체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국리
170cm-145kg라고 했다. 누가 봐도 인간으로서는 비정상이다. 그 상대도 오래전부터 건강에 이상(파킨슨병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잔뜩 부은 자태와 초췌해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지만, 초조함이 깃들여진 느낌이다. “공개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 ‘위험한 거래’라고 한다. 21세기의 ‘물물교환’, 몰래 하지 않는 ‘암거래’... 핵·위성 기술, 재래식 포탄, 식량, 에너지 등등이 오고 갈 거란다. 저들 몸뚱이만큼이나 비정상적이지만, 이 나라는 물론 국제적인 안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패악(悖惡)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세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서 두루 언급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이 시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저들 만남과 야합의 궁극적인 목적은 과연 무얼까? 서로 일치하는 접점이 있을 터이다. 혹시 ‘방탄’(防彈)? ‘차르’(Czar)와 ‘최고 돈엄’(最高 豚嚴) 보전을 위한 현재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더하여 후계(後繼)에 대한 근심 걱정도... 그런 초조함이 만남과 야합의 가장 큰 동기이면서, 뒷면에 깔리는 분위기는 아닐까. 그런데... 이 나라에서도
흔히들 생명이 다할 때를 기해 이성을 잃은 행동을 이판사판이라 한다. 여기에 공사판이란 말까지 덧붙이면 너무 지저분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문재인 정부 이후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의 정치판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잡범인 자신의 모습을 정치판을 이용해 정당화시키려는 술수는 한국 정치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위이며 모습이다. 아마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나오는 간신들의 술수에서나 볼 수 있는 행위를 답습이나 한 것 같아 정치를 해본 필자로서는 한심한 생각뿐이다. 5천년 역사에 잊을 수 없는 6·25가 끝난 후 빨갱이 잔당들이 온 나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듯이 지금의 현실과 유사하지 않은가? 여기엔 국민의힘 소속 일부 인사들도 예외가 아닌 한통속의 공로자이다. 이렇게 정치판이 이판사판이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이판사판으로 돌아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한마디로 모든 힘을 모아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망가진 경제적 불황을 극복하기 힘들 뿐 아니라, 세계사에 가장 악랄한 푸틴과 김정은의 두 독재자 간 생존게임에 전쟁의 공포 불안은 말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 정치인들은 분열의 기름만 태우고 있으니, 하루빨리 냉정하게 이성을 찾아야겠다. 지난날 정치권의
▪ 조물주는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음(陰)과 양(陽)의 기운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 곳에는 어김없이 분명한 기준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회전운동의 중심점이기도 하고, ‘어둠’과 ‘빛’이 순서를 바꾸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 멀리 갈 것도 없이, 1953년 6.25동란의 정전과 함께 한반도 또한 휴전선을 기준선으로 ‘어둠’과 ‘빛’의 기운으로 나뉘어 그 성질이 정해져 버렸다. 야속하기 짝이 없는 창조의 원리를 따라, 70여 년간 두 개의 기운이 ‘불편한 균형’을 유지해 오는 동안, 뚜렷해진 것이 있다면 어둠은 공산당의 나라 ‘북한’이고, 빛은 내나라 ‘대한민국’이었다는 사실이다. ▪ 상대적인 것들을 굳이 세분하여 호칭 안에 가둬놓고 싶어하는 이들은 이 경우의 ‘어둠’을 좌(左)라고 불렀고, ‘빛’은 우(右)라고 불러왔다. 빛의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왔으면서 어쩌다 ‘그릇됨’을 의미하는 ‘좌’에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들은 어느 순간부터 ‘진보(進步)’라는 단어를 가져다 뒤집어쓰려고 애써왔지만, 어차피 ‘올바름’의 대척점에 선 그들은 여전히 그릇된 어둠의 기운에서 자양분을 빨아당겨야 하는 습생 탓인지, 그들의 안구 밖으로 펼쳐진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그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이들에게서 진정한 참회와 개과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부 정치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환심의 교묘한 언사(言辭)와, 아첨의 안색을 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일순모면(一瞬謀免)을 바란다. 일부의 정부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은폐하고, 시간과 함께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기억상실을 기대한다. 기업의 소위 오너라는 일부의 대주주는, 사적인 탐욕추구에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도 그에 따른 손해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지위보전을 간구한다. 언제부터인지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좀 잘난 사람에게서 참회와 개과를 찾기란 창해(滄海)에서 일속(一粟)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천수경의 참회게(懺悔偈)에 “예전부터 내가 지었던 모든 악업은, 모두가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는데, 몸과 입과 뜻을 따라 생겨난 것이므로, 나 이제 그 모든 죄업을 참회하옵니다.”라고 하면서 참회를 하고 개과를 다짐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범한 죄를 기억하고, 고백하고, 뉘우치고, 죄가 사해지기를 원하고,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을 서
간혹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아주 빠르게 아무런 생각이 없이 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탈무드에서는 “가는 속력보다 가는 방향”이라고 하였지만, 어느 시기부터 촛불혁명이라고 하면서도 올바른 공약은 없이 등장한 무리가, 나침반도 가지지 않은 채 가야 할 방향이라며 가기 싫은 국민들까지 몰아갔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책의 실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사익을 지키기 위한 것에 더 몰두하였다. 역사에서 사상과 가치관의 큰 혼동이 있었던 시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중에 실패한 사상과 가치관의 한 페이지가 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서, 혁명의 주체는 일반 노동자 계급으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작인 그보다 더 하층 노동자 계급은 오히려 반혁명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존재로 경시되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바탕을 둔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은 스탈린을 거치면서 완수되었지만, 인민이 가야 할 방향은 제시하지 못한 채 독재로 치달으면서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인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공산주의는 후일 가야 할 방향을 잃고 민주주의에 그 자리를 내